PF 위기③ '낡은 부동산 공화국', 그들만의 '위험한 연착륙'
자산 시장의 호황, 이른바 '유동성 파티'가 끝났다. 파티가 남긴 230조 원이라는 PF 부채가 우리 경제를 억누르고 있다. 고통을 받는 이들은 사람은 불안한 주택 시장과 닫힌 대출 창구 앞에 삶을 위협받는 서민들이다. 과욕으로 위기를 키운 기업과 금융은 법과 제도를 이용해 책임과 손실을 떠민다. PF 위기를 키운 진짜 책임자를 밝히고, PF 위기의 해법을 세 차례 보도를 통해 모색한다.
① 태영건설 워크아웃 '추락의 해부'
② 누구를 위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인가
③ 낡은 부동산 공화국, 그들만의 위험한 연착륙
지난 5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연착륙 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PF 문제가 본격 제기된 2022년 9월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사태 이후 20개월 만에 나온 대책이다.
정상 사업장에는 공공과 민간의 자금을 투입하고, 부실 사업장은 경매와 공매 등을 통해 정리한다는 것이 대책의 주 내용이다. 민간 시장 참여자들이 사업성 평가와 정리를 주도하고, 정부는 사업성 평가의 가이드라인 제시, 규제 완화, 시장 감독 등으로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취임 2년 기자간담회에서 올 하반기 이후로는 PF 위기가 촉발할 수 있는 시스템 위기를 뜻하는 'n월 위기설'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PF 위기 대응을 자신의 업무 성과의 하나로 꼽으며, 위험 확산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고 시장을 안정화시켰다고 자평했다.
'n월 위기설' 없다?... 위기는 이제 시작
전문가들의 의견은 금융당국과 다르다. 정부가 인식하고 있는 부실의 규모가 현장의 상황과 차이가 크고, 경제 상황이 지속적으로 순항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금융이 잠재적인 부실을 감추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안재환 인하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금융당국의 희망적인 기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금융감독원 실무자로 저축은행 내부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당시 저축은행들은 사업성 검토 없이 과도한 부동산 PF 사업에 자금을 댔다가 부실을 초래했다. 30여 개 저축은행에서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발생하고, 10만여 명의 예금 피해자가 생겼다. PF 사업에 참여한 금융사가 저축은행에서 증권사, 캐피털사, 새마을금고 등으로 바뀌었을 뿐, 부실의 양상은 2011년이나 지금이나 같다.
안 교수는 저축은행 사태 당시 자기자본비율(BIS)을 5%로 신고한 저축은행의 내부 자료를 점검하다가 실제 수치가 -50%에 이른다는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인식하는 부실 규모와 실제 금융사의 재무 상황이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안 교수는 지금도 건설사와 중소 금융사 같은 민간 기업들이 손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금융당국이 부실 PF의 잠재적인 위험성을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이 정리할 부실 PF 사업장을 전체 사업장의 10% 이하라고 본 것도 현장의 사정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의 발표대로라면, 전국 5,000여 개 사업장 가운데 500곳 정도의 사업만 정리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숫자는 금리와 공사비, 분양상황 등의 상황에 크게 변동될 수밖에 없다. 뉴스타파가 지난 3년간 추진된 서울 지역 신축 사업장의 인허가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1년 이상 착공이 지연되고 있는 사업장이 1,500여 곳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늦장 대처로 PF 부실 규모를 키운 당사자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2022년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 당시에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웠지만, 적어도 금리 인상 추세가 멈춘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적극적으로 부실 PF 사업장 정리에 나섰어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1년이 넘도록 PF 위기론 확산을 잠재우는 데 집중할 뿐,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그 사이 여러 PF 사업장에서 대출 만기 연장을 반복하며 이자가 누적됐고, 부실의 규모는 커졌다.
건설·금융 살리는 땜질 처방...서민, 실수요자는 없다
건설사와 금융사는 이번 정부 대책으로 숨통을 텄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캠코는 약 1조 원 규모의 캠코 PF 펀드를, 금융권은 최대 5조 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을 각각 조성해 PF 사업장을 지원하고 있다. PF 사업 지원에 참여한 금융사들은 당국으로부터 건전성 평가 등에 대한 한시적인 금융 규제 완화 조치를 받는다. 금감원은 개별 부실 사업장에 오는 8월 초까지 정리 계획을 제출하라는 지침을 전달한 상황이다.
반면, 핵심적인 PF 대책이랄 수 있는 재발 방지와 수분양자 대책은 빠졌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건설·금융의 과도한 이윤 추구가 PF 위기를 부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해법도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PF 부실을 떠넘기기 위해 수분양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건설사의 행태가 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PF 대책이 건설·금융 살리기에 치중된 '땜질 처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자칫 정부의 건설사 살리기가 또 다른 경제 위기의 뇌관인 가계부채를 건드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부동산 PF 사업의 최종 종착지는 수분양자다. 자금 수혈로 정상화된 PF 사업이 끝까지 마무리 지으려면 결국 분양 대금을 끌어와야 한다. 상당 부분은 수분양자가 새로 일으킨 가계부채로 채워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부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8.12%다. 스위스에 이어 세계 2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00조 원에 이르는 국내 가계부채의 연체율은 2022년 하반기 이후 계속 상승 중이다. 경제 불황 속 서민, 자영업자들의 부채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부동산 투자 수요를 자극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사와 금융사를 살리는 땜질 처방으로 부동산 PF 부실을 덮는 일은 윤석열 정부 임기 내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말 발생한 태영건설 부도 위기와 오는 11월 준공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대표적이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12,000여 세대가 입주하고 총사업비가 약 10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다.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등 대형 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하고, 약 7,000억 원의 금융권 PF 자금이 투입됐다.
이 사업은 지난 3년간 정부 정책 변화와 부동산 경기 급변 속에 수차례 위기를 겪었다. 공사 중단 사태와 채무불이행 위기, 미분양 위기를 차례로 겪었다. 사업 규모가 크다 보니 위기를 겪을 때마다, 경제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위기 때마다 이 사업을 구해낸 건 윤석열 정부였다. 2022년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이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자, 정부는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주택 투자 수요를 늘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를 상향 조정하고, 규제 지역에 대한 대출 규제도 풀었다.
아파트 중도금 대출 제한 기준선을 기존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올리면서 수혜가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에 돌아갔다. 재건축 조합은 대출 규제에 대한 부담을 던 상황에서 분양가(3.3㎡당 3,829만 원)를 올려잡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안한 금액인 3.3㎡당 2,900만 원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다.
특별공급과 1순위 청약에서 분양 성적이 저조하게 나타나자, 또 정부가 나섰다. 재건축 조합은 계약금을 받아서 만기 채권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저조한 계약 성적으로 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정부는 HUG 보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중도금 대출 제한을 없애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잇따른 규제 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899세대 미계약분이 발생해 분양은 무순위 청약 단계까지 넘어갔다. 앞서 정부는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포하고 무순위 청약의 무주택, 거주지 요건을 폐지했다. 무주택자와 지역 거주자 등 실수요자에게 우선 주택을 공급한다는 청약 제도의 원칙까지 허문 것이다.
결국, 무순위 청약에 전국의 청약통장 4만여 개가 몰리면서 최고 경쟁률 655 대 1로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완판에 성공한다.
윤 정부의 '빚내서 집사라 시즌2'가 더 위험한 이유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사례는 윤석열 정부가 230조 원 규모의 부동산 PF 문제를 어떻게 풀려고 하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각자의 이익을 좇다가 위기를 키운 것은 조합과 시공사, 금융사였지만 결국 이 문제를 풀어낸 건 정부가 다시 소환해 낸 부동산 투자 광풍이었다.
'올림픽파크 포레온'으로 이름을 바꾼 둔촌주공아파트는 오는 11월 입주를 시작한다. 최근 84㎡ 형 분양권이 분양가보다 10억 원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등 시세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부양 정책, 이른바 '둔촌주공 일병 살리기'가 성공한 셈이다. 수혜는 조합과 시공사, 금융사, 그리고 수분양자들에게 돌아갔다.
둔촌주공은 살렸지만, 주택정책의 기본원칙은 무너져
반면,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을 우선 공급하고,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시장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택정책의 기본 원칙이 무너졌다. 둔촌주공아파트 분양을 앞둔 2022년 11월,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둔촌주공) 특정 주택단지를 중심으로 중도금 대출 규제를 완화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이 발언은 불과 40여 일 만에 뒤집어졌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PF 위기 재발 방지와 실수요자 보호 등 진짜 PF 대책을 말하는 대신, 부동산 경기 부양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 금리가 내려가고, 다시 부동산 시장에 호황이 오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는 것이 정부의 '속셈'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부동산 관련 조세와 대출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해 왔다. 종부세, 재산세,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관련 조세는 줄이고, 공급과 대출에 대한 규제는 없앴다. 이전 박근혜 정부 시절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했던 부동산 시장 부양 정책, 이른바 '빚내서 집 사라' 정책과 판박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부동산 정책이 서민·중산층을 위한 것이라 말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이 18주 연속 상승하는 등 집값이 들썩이면서 서민·실수요자들의 주거는 더욱 불안해지는 상황이다. 포화 상태의 가계 부채,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저성장, 인구 구조 변화 추세 등 산적한 위기를 앞두고, 정부의 부양 정책이 역효과를 낼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부족한 주택 수요를 미래 세대가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초 특례보금자리대출을 출시한 데 이어, 올해 신생아 특례대출을 내놨다. 대출 소득 요건이 부부 합산 1억 3,000만 원 수준으로 까다롭지 않아서 출시 4개월 만에 신청액이 6조 원을 넘었다.
이러한 특례대출 상품은 최근 서울·수도권 집값 상승의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책이 현재의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미래 세대의 부채를 끌어다 쓰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미래 어느 시점에 수요가 없어졌을 때는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대책 역시, 실상은 부동산 부양책에 가깝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범정부 저출산 대책에는 신혼·출산 가구에 대한 주거 지원 내용이 담겼다. 기존 1억 3,000만 원이었던 신생아 특례 대출의 소득 요건을 2억 원으로 완화해 준다는 내용을 포함해, 신규 택지 개발로 공급 물량을 늘리고 민간주택 분양에 미래세대가 더 많이 참여하도록 기회를 확대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해 한국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도시 인구 집중도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출 경우 약 0.4명 정도의 출산율을 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육아휴직, 고용, 혼외출산, 주택 가격 등 다른 정책보다 정책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대책의 우선순위가 서울·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것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작 윤석열 정부의 주거 관련 저출산 대책에는 이러한 내용은 빠져 있다.
당초 이번 달(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을 돌연 두 달 연기한 것은 정부의 우선순위가 가계부채 확대를 억제하는 것보다 부동산 부양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트레스 DSR은 대출 한도를 결정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산정할 때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부과하는 것으로, 가계의 대출 확대를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2월부터 순차적으로 가산금리 적용 비율을 높여가는 중이다.(25%→50%→100%)
정부가 2단계 적용을 연기하면서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대출한도가 줄기 전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7월 한 달(6월말~7.18)에만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3조 원을 넘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PF 부실을 덮겠다며 기업 대출을 가계 대출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기업과 달리, 개인은 어떻게든 빚을 갚는다는 '잔인한 믿음'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주택 공급을 위해 꼭 대단지 아파트를 지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부동산 PF 문제를 부동산 부양책이 아닌 PF 자체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기적으로 충격이 있더라도 부실을 키운 기업과 금융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제도적 변화는 물론, 건설산업 전반을 구조 조정하고 변화한 시대적 환경에 맞춘 새로운 부동산 공급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반복되는 PF 위기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 우발 부채로 위험을 키우며 동시다발의 사업을 진행하다, 한 사업장이 멈춰 서게 되면 건설 산업 전체의 위기로 확대되는 현행 구조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사업비의 단 3%만 가지고 나머지 97%의 부채를 일으켜 무모한 사업을 벌이는 영세 시행사의 문제도 심각하다. 최소 20% 이상의 자기 자본을 갖춘 시행사가 사업을 추진하고, 공공기관의 보증을 받도록 하는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금융사는 사업성 평가 역량을 키우고, 민간 보증에 의존해 대출을 내주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 건설사 중심의 선분양 제도를 개선하고, 수분양자와 투자자의 알권리를 위해 PF 사업장의 사업 추진 경과 등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건설업계는 이러한 산업 구조조정이 공급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변화와 개혁에 저항해 왔다. 하지만 저성장과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인해 이미 수요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만큼 더이상 변화를 늦추긴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아파트 단지 등 대규모 공급보다 수요자, 지역 등의 특색에 맞는 소규모 개발, △수직 증축 중심의 재개발·재건축이 아닌 도보 생활권 중심의 개발, △ 적정한 공공 분양-공공 주택 공급 등 새로운 시대에 발맞춘 대책을 더 활발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타파 오대양 ody@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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