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노동자는 “화장실·엘리베이터 쓰지 말라”는 백화점과 면세점 [플랫]

플랫팀 기자 2024. 7. 2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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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면세점 인천공항점에서는 신규입점 노동자들에게 “필수화법”을 가르친다. 불만을 표현하는 고객에게 필수적으로 노동자가 해야 하는 말이다. “고객님, 많이 불편하셨겠습니다.” “고객님, 기분 상하게 해 드린 점,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주의하겠습니다.” 고객이 불만을 어떻게 표현하건, 노동자의 입은 매뉴얼이라는 이름으로 틀어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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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동탄점에서는 ‘고객 불만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매뉴얼’을 배포했다. “오해를 살만한 표정을 짓지 마세요” “고객의 말을 끊지 마세요” “고객이 느낀 불편함에 진심어린 사과를 하세요.”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고객이 오해할 만한 표정’인지를 스스로 검열하게 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지난 9월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 제주JDC면세점을 ‘부당노동행위’로 제소했다. 이들이 마땅히 우리와 교섭해야 할 사용자라고 판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사용자성을 거부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노조법 2·3조는 국회의 시험대에 오르려고 한다.

백화점과 면세점은 우리가 샤넬, 시세이도, 로레알의 노동자일 뿐이라고 했다. 자신들은 협력업체 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화장실을 쓰지 말라고, 엘리베이터도 타지 말라고 한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7월16일에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는 화장실을 쓰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들은 우리의 노동시간도 관장한다. 연장영업 공지는 수시로 카톡으로 내려온다. 고객 앞에선 무조건 “네, 네” 부당한 처우에도 입도 뻥끗하지 말라는 매뉴얼이 배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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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백화점과 면세점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하다. ①노동자의 근무시간과 휴일의 결정 문제 ②매장 내 화장실과 휴게실 등 시설물 이용 보장 및 개선 문제 ③노동자를 감정노동부터 보호하기 위한 고객응대 매뉴얼 작성 문제. 이 세 가지는 각 브랜드사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노동자가 일하는 장소가 매장이고, 그 매장의 노동시간·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하는 것은 백화점과 면세점이다. 그러나 이들은 2023년부터 지금까지 장장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노동자에게 그 어떤 응답도 하지 않았다. 이들이 방패삼고 있는 것은 바로 현행 노조법 2·3조다. 이들의 명백한 책임을 낡은 법이 숨겨주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근로자의 노동조건, 수행업무, 노동조합 활동 등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자”라고 사용자를 규정하고 있다. 바로, 우리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백화점과 면세점이 우리와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제대로 통과된다면, 백화점과 면세점의 노동자들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휴게실이 없어서 화물차가 다니는 복도에 이불을 깔고 주저앉아 있는 대신, 제대로 된 휴게실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갑질 고객 앞에서 눈치만 보는 대신, 제대로 된 매뉴얼을 토대로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영업시간에 관해 백화점·면세점과 협의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헌법에는 노동 3권이 보장되어 있다. 노동자가 노동시간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사용자와 자신의 노동에 관해 교섭할 수 있도록 한 권리다. 그러므로 마땅히 백화점과 면세점의 노동자들에게도 그 노동 3권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노동을 결정하는 이들이 우리와 교섭에 나서야 한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즉각 통과시키라. 백화점과 면세점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자기 삶을 지킬 수 있는 ‘진짜 노동3권’을 보장하라.

▼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위원장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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