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안 될 거라고 했는데”…한국 핸드볼 우생순들이 예선 한 경기에 눈물 흘린 이유
“모두가 안 될 거라고 얘기했는데….”
말을 이어가던 골키퍼 박새영(30·삼척시청)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눈엔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만 같은 눈물이 고였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25일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 6’에서 열린 독일과 2024 파리 올림픽 A조 1차전에서 23-22로 승리했다.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린 순간, 선수들은 코트로 쏟아져 나와 강강술래 세리머니를 하며 마치 메달을 딴 것처럼 기뻐했다. 박새영을 포함한 일부 선수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이제 막 예선 한 경기를 치른 선수들이 이토록 기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경기 직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박새영은 “포지션 하나하나 따졌을 때 모두가 안 될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며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서 값진 승리를 따낸 것에 더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이날 한국이 독일을 꺾은 건 이변에 가까운 결과다. 세계 핸드볼 변방으로 밀려난 지 오래인 한국은 지난해 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독일이 6위에 오를 때 22위에 머물렀다.
선수들을 더 힘들게 한 건 ‘무관심’이었다. 여자핸드볼은 리그에 대한 관심은 적어도 올림픽에서만큼은 큰 관심을 받아왔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배경으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그러나 2016 리우(10위)와 2020 도쿄(8위) 대회에서 연거푸 조기 탈락하며 올림픽에서마저 조명받지 못했다. 파리 올림픽이 임박한 시점까지도 핸드볼에 대한 관심도는 높지 않았다. 우빛나(23·서울시청)는 대회를 며칠 앞두고 “핸드볼도 축구만큼 재밌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며 핸드볼의 매력을 어필하기도 했다.
이날 선수들의 가슴을 더 뜨겁게 한 건 팬들의 열렬한 응원이었다. 후반전 한때 4점 차까지 밀렸던 한국은 끈질긴 뒷심을 발휘해 기어이 경기를 뒤집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어느 순간부터 ‘코리아’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외국 관중까지 한국의 플레이에 매료돼 함께 코리아를 외쳤다. 키 165cm 강경민(28·SK 슈가글라이더즈)은 독일 장신 수비진에 밀려 넘어졌다가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득점했고, ‘에이스’ 류은희(34·헝가리 교리)는 고비 때마다 골망을 흔들며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강은혜(28·SK 슈가글라이더즈)는 경기 내내 독일 선수들과 몸싸움하며 궂은일을 도맡았고, 골키퍼 박새영은 경기 막판 연이은 ‘슈퍼 세이브’로 뒷문을 지켰다. 헨리크 시그넬 감독은 후반전 추격 상황에서 골키퍼를 빼고 필드 플레이어 7명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경기를 본 누구라도 열광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강경민은 “여자핸드볼 경기가 오늘 있는지 모르는 분들도 되게 많았고, 유일한 단체 구기 종목이라 걱정됐는데 금메달을 딴 것보다 잊지 못할 순간이 된 것 같다”며 “유럽에 나와 ‘코리아’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우리 편이 많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독일전 승리를 토대로 자신감을 찾은 한국의 다음 상대는 슬로베니아다. 한국은 2023 세계선수권에서 슬로베니아에 27-31로 졌지만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더 까다로운 독일을 꺾은 만큼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다. 류은희는 “이 승리에 연연하거나 젖어 잊지 않고 빨리 털어내겠다”며 “슬로베니아전에서도 이기는 경기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경기는 한국시간으로 28일 오후 6시에 시작한다. 1승, 그보다 더 값진 것을 얻은 여자핸드볼의 올림픽 여정은 지금부터다.
파리 |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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