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21세기 '창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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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공정한 세금'도 시간이 지나면 '나쁜 세금'이 될 수 있다.
창문세를 덜 내려고 창문 수를 줄이는 납세자가 속출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를 찬찬히 살펴보면 수세기 전 창문세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세정 인프라가 부족하던 개발 시대에 상속세는 부의 재분배를 촉진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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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공정한 세금’도 시간이 지나면 ‘나쁜 세금’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황당한 사례로 거론되는 영국의 ‘창문세’(window tax)도 도입 당시엔 꽤 그럴싸한 제도로 여겨졌다. 일종의 부유세인데, 잘사는 집일수록 비싼 유리 창문이 많았고 근대적인 의미의 과표구간도 있었다. 직전에 폐지된 난로세와 비교하면 세금 징수관이 집안에 들어가 난로 개수를 세야 하는 불편도 없었다.
17세기 말 도입돼 150년 이상 시행된 창문세는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창문세를 덜 내려고 창문 수를 줄이는 납세자가 속출했다. 창문을 벽돌로 막아버리자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질병이 자주 퍼졌다. 집에 들어오는 빛이 줄어들자 아이들의 성장이 더뎌졌고, 우울증에 걸리는 성인들이 늘었다.
밸류업 하려면 상속세 손봐야
우리나라의 상속세를 찬찬히 살펴보면 수세기 전 창문세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세정 인프라가 부족하던 개발 시대에 상속세는 부의 재분배를 촉진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였다.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았고 기업 규모가 크지 않아 기업 경영권을 둘러싼 이해관계도 복잡하지 않았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세 부담이 불어나자 부자들은 합법적인 절세, 탈세 방안을 찾아내고 있다. 대주주의 자녀들이 세운 개인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이 회사를 키운 뒤 매각하는 ‘터널링’은 이제 중소·중견기업에서 더 성행한다. 주가를 기준으로 상속세를 매기다 보니 경영권 승계를 앞둔 기업들이 상속세 부담 탓에 주가를 인위적으로 누른다는 비판 여론도 거세다.
상속세제 정상화가 특히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국경을 넘나드는 부의 이동 때문이다. 주요 국가의 조세제도를 비교 분석해 최적의 절세 방안을 찾아내는 다국적 기업들이 좋은 본보기다. 애플, 아마존, 구글, 스타벅스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혁신 기업이 죄다 ‘이전가격’ 등을 통해 합법적으로 법인세를 회피하는데, 주요 선진국의 세정당국도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글로벌 표준 따라야 부작용 없어
상속세도 다를 바 없다. 상속을 앞둔 부자들이 교육, 치안, 환경에 더해 세금까지 깎아주는 선진국으로 투자 이민을 고민하는 건 ‘번식 본능’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올해 1월 ‘징벌적 상속제도의 덫’ 기획 기사를 보도할 당시 놀랐던 건 이민 상속 컨설팅 시장이 이미 주요 선진국에 암암리에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확인해서다. 세계 주요 국가가 이런 부유층을 유치하기 위해 발 빠르게 과세제도를 손질하고 나섰지만 한국만 요지부동이다. 그 결과가 세계 1, 2위를 다투는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50%)이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국 평균(26%)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올해 정부가 최고세율 인하(50%→40%) 등을 담은 상속세제 개편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세계 각국을 넘나드는 ‘스마트 머니’를 상대하려면 글로벌 표준을 따라가야 한다. 상속·증여세가 과도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상황도 우려스럽다. 도덕적인 기업인, 투자가들도 탈세와 절세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번 세법 개정안이 그동안 한국 사회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부자 감세’ 이데올로기를 떨쳐내고 글로벌 스탠더드와 ‘먹사니즘’(실용주의)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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