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운명
고통 다스리고 새 길 열어야
힘 빼고 인생의 타석에 서서
감사하고 전진하며 살아야
혹독한 불행들이 끝없더라도
잘 견디고 잘 살아내는 게 일생
이응준 시인·소설가
30년 전, 이십대 중반이던 그는 환란 속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도맡아 병구완해드리던 어머니는 비극적으로 돌아가시고,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학업마저 중단한 채 반지하 단칸방에서 쫓겨나 낯선 곳들을 떠돌았다. 어디서 무엇을 새로 시작해야 할지 캄캄했다. 그나마 버틴 건 젊음 덕이었던 거 같은데 당시에는 그것마저 목숨과 함께 지워져버릴 듯한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무덥다는 한여름이었다. 그날 그는 대낮의 인사동 거리를 홀로 걷고 있었다. 둥글고 흰 작은 천막들이 보도블록 위 길가에 늘어서 있었다. 사주(四柱)를 봐주는 노점들이었다. 그런 것들은 그에게 미신에 불과해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그는 서늘한 과학도였다. 한데, 그런 그가, 무슨 파계(破戒)라도 저지르는 것처럼 그 둥글고 흰 천막 안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고독해서였다. 아무하고나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생년일월시(生年日月時)를 말하고 영감님에게서 들은 요점은 명쾌(?)했다. 어머니는 일찍 죽고 아버지와는 불화하여 집 떠나 방황하게 되고…등등.
이윽고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를 다시 걷는 그는 문득 깜짝 놀랐다. ‘평안’이 찾아온 것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온갖 불행들이 당연한 운명이라는 그 못된 소리가,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과 세상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역설적으로’ 휘발시켜버린 까닭이었다. 더 우스운 일은, 아까 그 영감님에게 음력생일을 깜빡 잘못 알려줬음을 뒤늦게 자각하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태어난 시각을 정확히는 몰라 안 그런 척 오전 9시라고 들이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이후로 그는 다시는 사주 같은 것을 보지 않았다. 그의 운명이 무엇이건 간에, 운명이라는 게 정말 있건 없건 간에, 그는 깨달아 얻을 것을 이미 완전히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사주를 통해서 말이다. 원망과 증오가 제거되니 ‘받아들임’에 이르렀고 해방감과 배짱이 생기며 눈이 밝아졌다. 비로소 그는 차분히 몸을 움직여 마음을 다스리며 새 길을 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삶이란 더 낮은 곳을 바라보며 감사하고, 주어진 만큼 아끼고 가꾸며 견디는 가운데 전진하는 수밖에는 없다. 이것이 최악 중에 최선이자 최선 중에 최선이다. 이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다. 힘을 빼고 타석에 서는 것이다. 사람을 망치는 것도 허무주의고 구원하는 것도 허무주의다. 제대로 살려면 ‘적절한 허무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청년은 반백(半白)의 중년이 돼 있었다. 돌아가실 때의 어머니 나이가 돼 있었다. 이제부터 그는 꿈속에서,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보다 점점 더 어려지는 한 여인에게 “엄마”하고 부를 터였다. 그간 이십대 중반 그 시절보다 더 혹독한 불행들이 그를 수없이 밟고 지나갔건만, 그는 견뎌냈다. 물론 기쁨도 많았지만, 행복에 대한 그의 생각 자체가 달라지고 깊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행복하지 못한 때에도 불행하지는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그는 먼지가 뒤덮인 어머니의 유품들을 정리하다가, 젊은 어머니가 태어난 지 보름이 지난 아기를 안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흑백사진을 발견했다. 그 아기는 그 여인의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훗날 병든 그 여인을 간호하게 될 거였다. 그녀의 죽음 때문에 죽음처럼 아파하고 슬퍼할 거였다. 한데, 흑백사진 뒷면에는 어머니의 글씨로 그 사진을 찍은 날짜와 아기의 정확한 생년일월시(生年日月時)가 쓰여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어머니가 오늘을 기다려 완성하시는 유머에 웃음이 맺혔다. 그리고, 또한, ‘엄마’는 그 옆에 이런 말도 적어놓았다. “나의 아가. 너의 일생, 사랑의 신이 돌봐주리라.”
웃는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람을 원망하고 세상을 증오했던 그 지옥 같던 여름 한낮, 어머니가 그를 그 시원한 이글루(igloo) 안으로 들어가게 하신 거라고 생각한들 무슨 하자가 있을 것인가. 어머니가 늘 아들을 위해 기도 올리던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들 무슨 죄가 될 것인가. 태풍에 부서질 듯 시달리는 삶이지만, 그 밤 그는 태풍의 눈 속에서 그 흑백사진 속의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자고 있었다. 잘 견디고 살아낸 것이, 어머니가 흑백사진 뒤에 적어놓으신 그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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