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검찰 ‘아귀’ 다툼, 누구를 위한 것인가

황대진 사회부장 2024. 7. 26. 00: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 여사 조사 놓고 檢 수뇌 충돌
‘윤석열 사단’ 내부 다툼에 국민 피로감 커져
문제 해결할 사람은 대통령뿐

김건희 여사 조사를 놓고 이원석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사이에 ‘아귀’ 다툼이 벌어졌다. ‘아귀’는 이 총장이 자주 쓰는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 총장이 김 여사 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수사팀을 질책하고 진상 파악을 지시하자 수사 검사들이 “우리가 권력에 아부하는 아귀란 말이냐”며 반발한 것이다. 수사에 참여한 부부장 검사는 “아귀가 무슨 할 말이 있느냐”며 사표를 내기도 했다.

쟁점은 두 가지다. 김 여사를 검찰청사가 아닌 대통령 경호처 부속 건물에서 조사한 것이 맞느냐와, 조사 사실을 총장에게 10시간 뒤에 보고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것이다. 이 총장은 “법 앞에 예외 없다”며 김 여사를 검찰청으로 소환하라고 했는데 이 지검장과 수사팀이 그 지시를 어겼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 지검장과 수사팀은 김 여사 경호 문제를 고려하고, ‘출석 요구를 하는 경우 피의자와 조사 일시·장소에 관해 협의해야 한다’는 검찰 사무 규칙에 따른 것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 사후 보고와 관련해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총장의 수사 지휘권이 없기 때문에 그 사건 조사가 끝나고 뒤늦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총장은 디올 백 사건은 지휘권이 있는 만큼 사전에 조사 일정을 보고해야 했다는 입장이다. 이 총장이 대검 감찰부에 진상 파악을 지시하고 이 지검장은 “협조 못 한다”고 맞서면서 양측은 정면충돌 직전까지 갔다.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사건으로 고발된 지 4년이 넘었다. 디올 백은 고발장 접수 5개월이 지나서야 검찰이 수사팀을 구성하고, 다시 두 달 이후 김 여사를 조사했다. 검찰이 이렇게 사건을 질질 끈 데에는 이 총장 책임이 작지 않다. 임기가 끝날 무렵 갑자기 수사 속도를 주문해 일선 검사들이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또 ‘총장 패싱’ 논란이 불거진 후 수사팀을 몰아붙이는 모습도 총장답지 못했다. 이 지검장 역시 현직 대통령 부인 조사라는 중대 사안을 총장에게 보고 없이 진행한 것은 지휘·보고 체계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법적으로는 문제없다고 해도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유로 일반인과 달리 취급한 일은 수사에 대한 국민 불신을 자초한 것이다.

지금은 다투지만 알고 보면 두 사람은 같은 ‘윤석열 사단’ 출신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이 총장은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이 지검장은 대변인으로 윤 대통령을 보좌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 사단의 ‘넘버2′라고 한다면 이 총장은 ‘넘버3′쯤 된다. 여기에 최근 김 여사 조사를 맡은 이 지검장을 편의상 ‘넘버4′라고 한다면, ‘넘버2′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해 ‘넘버1′의 권력에 도전하는 가운데, ‘넘버1′ 아내 관련 수사로 ‘넘버4′가 ‘넘버3′에게 항명한 것이 최근 며칠간 대한민국의 주요 뉴스였다. 지켜보는 국민은 이들이 왜 이렇게 싸우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근본 원인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총장 패싱’ 논란은 지금 검찰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 이 총장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의 ‘한동훈 배신자’ 논란도 결국 여당의 주도권이 당대표가 아니라 줄곧 윤 대통령에게 있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윤 사단에서 벌어진 사달은 윤 대통령이 풀 수밖에 없다. 요체는 대통령이 먼저 갈래를 타서, 실제 일을 맡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권력을 적절히 나눠 주는 것이다. 그래야 ‘아귀 다툼’ 같은 일이 윤 대통령을 바라보고 벌어진 일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