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복의 일상 그 너머] 5. 한여름 밤바다 수놓던 어화(漁火) 점점 꺼져간다
집어등 불빛 여행객 낭만 선사
마른 오징어 맥줏집 1호 안주
휴가철 오징어회 대표 먹거리
해수온도 상승 탓 어획량 감소
5년전 비교 10분의1 미만 잡혀
공급 줄어 횟감 가격 천정부지
장마 물러난 사천 앞 바다 잔잔
주문진항 위판장 분위기는 썰렁
‘노인과 바다’ 어부 떠올라 먹먹
휴식을 모르는 파도의 껍질을 비집고 강한 불빛이 침투한다. 한밤의 바다는 신비로운 속살을 드러낸다. 오징어는 떼 지어 빛을 향해 달려든다. 여름밤 가로등에 꼬이는 부나비처럼. 하지만 녀석들이 좋아하는 건 불빛이 아니라 먹이다. 오징어 배 집어등(集魚燈) 불빛을 어화(漁火)라고 한다. 이 빛을 향해 플랑크톤이 표층으로 떠오르면 새우와 작은 물고기들이 먹거리를 찾았다며 몰려든다. 이때 오징어는 이 작은 고기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먹이사슬의 현장이다.
오징어는 이렇게 한밤중에 잡는데 일출 직전에 더 잘 잡힌다고 한다. 그래서 어부들은 어둠이 깔린 뒤 바다로 나가 다음날 해 뜬 뒤에 작업을 마감한다. 오징어 먹물처럼 어두운 바다가 삶의 터전인 것이다. 잡는 방법은 주로 채낚기다. 바늘을 여러 개 단 낚싯줄을 수심 100m 정도까지 내려보냈다가 채 올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녀석들을 더 쉽게 유인하기 위해 줄 중간에 가짜 미끼를 여러 개 달기도 한다. 과거엔 낚싯줄을 손으로 끌어 올렸는데 요즘엔 자동 조획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한여름 밤바다를 적시는 어화는 낭만적이다. 여행객들은 해변에 앉아 수평선을 뜨겁게 수놓는 불빛을 카메라에 담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도 아주 멀다. 악천후에도 낚싯줄을 당겨 올려야 하는 선원들의 거친 손끝에는 생활과 생존만이 매달려 있다. 그래도 많이만 잡히면 좋겠지만 여건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지난 19일 이른 아침, 강릉 사천 앞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퍼붓지는 않았지만 열흘쯤 이어진 장마가 이젠 물러가는 듯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오전 7시 넘어 햇살이 바다를 가득 메웠는데 오징어배 한 척이 나타났다. 꼴찌의 마라토너처럼 움직임이 무거워 보였다. 잡은 고기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한 마리라도 더 낚기 위해 날이 훤할 때까지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주문진항 오징어 위판장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하다. 밤을 꼬박 새우고 조업하지만 잡히는 고기는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큰 배들은 아예 조업을 포기하고 며칠째 정박해 있는 걸 본다. 기름값과 인건비도 건지기 힘든 탓이다. 소형 어선을 가진 어부들은 비바람 예보만 없으면 바다로 나간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같은 어부가 요즘 동해안에 적지 않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동해안은 수심이 깊어 오징어가 살기에 아주 좋다. 주문진, 속초, 울릉도가 최대 어장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오징어는 봄부터 가을까지 잡히는데 역시 제철은 그 한 가운데인 여름이다. 녀석들은 낮에는 100∼200m 되는 깊은 바다에서 놀다가 밤에 집어등이 켜지면 모이는 작은 어류를 잡아먹기 위해 수심 20m 안팎까지 올라온다. 염분이 많은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해변 쪽으론 거의 오지 않는다.
예전에 휴가철을 맞아 동해안으로 놀러 온 이들의 밥상에 오징어회가 빠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즈음 밤바다는 불야성을 이루었다. 갑판마다 촘촘히 매달린 커다란 전구가 일제히 불을 밝히면 영화 세트 같은 풍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영 달라졌다. 어느 해는 잠깐 풍어를 맛보기도 하지만 통계를 보면 황금어장은 지나간 시절의 얘기로 들린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바닷물 온도 상승이 주된 원인이라고 말한다. 동해안 오징어 어획량은 2010년대 들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데 상황은 악화일로다. 올 1분기 강원과 경북 지역의 오징어 위탁판매량은 약 700t으로 5년 전(9000여 t)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수산업계 종사자들은, 지난해 바닥을 친 줄 알았던 오징어 어획량이 올해 더 줄어들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중 횟감으로 인기가 높은 산오징어는 작년의 절반 수준이라며 울상을 짓는다. 공급이 주니 자연히 가격은 오르고 있다. 요즘 주문진 어시장 가격은 치어를 막 벗어난 것이 한 마리에 1만 원이나 한다.
수온이 오르면서 어장은 점점 더 북상하고 있다. 지난 60년간 바다 표면 온도가 25도 이상인 고수온 관측일은 30배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물고기 생태계도 아열대성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오징어는 오적어(烏賊魚), 묵어(墨魚)라고도 불린다. 적을 만나면 등에 붙은 먹물 주머니에서 시꺼먼 물을 뿜어내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먹물 분출은 적의 시야를 가리려는 게 아니라 상대가 먹물 냄새를 맡고 정체를 파악하는 동안 도망가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오징어는 머리, 몸통, 다리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머리가 다리와 몸통 사이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오징어는 낙지나 문어와 함께 연체동물 중 두족류(頭足類)로 분류된다. 머리에 다리가 붙어 있다는 뜻이다. 새끼 오징어 보호를 위해 보통 4∼5월 두 달을 금어기로 정해놓고 있다. 그럼에도 통통하게 살이 오른 오징어는 요즘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로 한국 오징어가 세계 곳곳에 알려졌는지 모르지만 정작 이 땅에서 신선하게 먹을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오징어를 즐기는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생물부터 반건조, 건조, 냉동까지 어느 단계에서나 맛있는 먹거리로 활용된다. 산 오징어는 회, 초밥, 물회로 먹는다. 슴슴한 뭇국과 매콤한 볶음, 시큰한 초무침, 고소한 버터구이, 바삭한 튀김은 국민요리다. 여기에다 순대, 부추전, 오삼(오징어+삼겹살)불고기에 먹물 파스타, 먹물 핫도그도 있다. 젓갈과 고추장 진미채 볶음도 빼놓을 수 없다. 마른오징어는 황태와 더불어 맥줏집 1호 안주가 된 지 오래다.
이렇게 잔뜩 나열된 먹거리를 보면 걱정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싶다. 더워지는 바다를 막기 위한 풀뿌리 환경운동에 나서야 할 것 같다.
컬처랩 심상 대표 simba3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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