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마약 범죄, 위장 수사 허용하라
필로폰 16kg을 밀반입한 태국인이 최근 경기 화성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태국에 있는 총책에게 50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범죄에 동참했고, 반죽기 안에 필로폰을 숨겨 국제 탁송 화물로 배송받았다고 한다.
필로폰 16kg은 53만3000명이 한 번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시가로 533억원에 달한다. 이 태국인은 필로폰 2kg을 지방의 한 대도시에 있는 한국인에게 ‘던지기’ 방식으로 판매했는데, 그중 일부가 이미 시장에 유통됐다고 한다. 경찰은 구매자를 추적 중이다.
최근 만난 한 일선 부장검사는 “이제 마약 범죄는 임계점을 넘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과거엔 외국인의 마약 범죄가 외국인 근로자들의 커뮤니티 안에서만 이뤄졌다. 그런데 이제는 국제 마약 조직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통해 수도권에 대량의 마약을 유통시키고 있다”고 했다.
작년 한 해 압수한 마약류는 998㎏이었다. 4년 전인 2019년(362㎏)보다 2.8배나 늘었다. 마약 범죄가 대표적인 암수 범죄(드러나지 않은 범죄)임을 감안하면, 실제 국내에 유통되는 마약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국내에서 압수된 마약류 대부분은 해외에서 밀수입된 것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마약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마약 시장이 커졌다는 뜻. 지난해 마약 사범 수가 처음으로 2만명을 넘었는데, 올해에는 처음 3만명이 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가 수백억 원어치 필로폰이 수도권에 밀반입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장에서 만난 검사들은 종종 “급증하는 마약 범죄에 대응할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했다”는 자조를 한다. 약한 처벌, 컨트롤 타워의 부재 등도 거론되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마약 범죄에 대한 위장·잠입 수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대면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마약 유통 조직 특성상, 조직의 상선(총책)을 수사하려면 수사관이 조직 내부에 직접 잠입해야 한다. 그런데 위장·잠입 수사가 위법이니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한다. 결국 구매자나 운반책 등 하선만 덜미를 잡힌다.
한 검사는 “요즘은 텔레그램으로 조직원을 뽑을 때도 신분증 검사를 하는데, 위조 신분증을 낼 수 없어 우물쭈물거리다 강퇴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 경찰의 위장 수사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일 뿐이다.
위장·잠입 수사를 허용하자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1대 국회에 마약류 범죄에도 위장 수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게다가 당시 발의된 법은 경찰에만 위장 수사를 허용하자는 취지였다.
22대 국회에선 검경 모두에 위장 수사를 허용하자는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 그래야 마약에 오염된 대한민국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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