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남대문·세운상가를 강북르네상스 양대축으로
왜 남대문 옆에선 차나 식사를 할 수 없을까
광화문광장을 남대문까지 연장할 수 있다면…
시장 바뀌면 철거·보존 놓고 싸우는 세운상가
리스본 성당처럼 외벽 남겨 재구성하면 어떨까
종묘~을지로까지 500m 新녹색공원 탄생할 텐데
스페인 세고비아에 가면 고대 로마가 만든 애퀴덕트 수로가 남아 있다. 이 시설은 17킬로미터 멀리 떨어진 시내에서 물을 끌어다가 도시에 공급하기 위해서 만든 인공 수로 건축물이다. 총길이 813미터, 높이 30미터의 크기로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다. 2000년 전에 이러한 엄청난 건축물을 만들어서 도시의 기반 시설을 구축했다는 점은 경이롭다. 참고로 조선시대에 만든 가장 큰 다리는 15세기에 만든 살곶이다리로 길이는 78미터이고 높이는 1.2미터다. 유럽에 가면 이런 경이로운 건축물들이 많은데 부러운 점은 그 건축물을 아직도 잘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고비아 애퀴덕트 바로 옆에는 레스토랑이 있어서 애퀴덕트 바로 아래에서 식사하면서 애퀴덕트를 올려다볼 수 있다.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 해가 지면서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그림자와 색상의 변화를 천천히 감상할 수 있다. 아침 식사를 할 때는 동측 햇빛을 받아서 다르게 보이는 애퀴덕트를 보면서 또 한 번 놀란다. 이처럼 유럽은 전통 건축물을 가까이서 두고 경험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져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남대문이나 동대문 같은 랜드마크 건축물은 모두 10차선 도로로 둘러싸여 있어서 근처에 앉아서 차분히 경험하기가 어렵다. 항상 시끄럽고 빠른 자동차와 함께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대충 보거나 길 건너편에서 걸어가면서 보는 것이 전부다. 우리나라는 문화재 주변을 성역처럼 관리하고 있어서 일상과는 괴리된 건축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건축물은 도자기나 그림 같은 문화재와는 다르다. 건축물은 사람의 일상과 합쳐질 때 비로소 의미가 완성된다. 그저 멀리서 쳐다보는 것보다는 일상과 하나 될 때 더욱 빛이 난다. 이는 마치 두 명의 연주자가 협연하는 것과 같다. 수백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건축물 바로 옆에 현대의 일상이 함께 있게 될 때 만들어지는 앙상블은 깊은 울림과 감동을 만들어 낸다. 세고비아의 애퀴덕트는 평범한 식사를 하면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인상 깊었다. 각 잡고 찾아가서 서서 몇 분 동안 바라보고 그 앞에서 사진만 찍고 왔다면 이렇게 여운이 많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고비아의 애퀴덕트에서 받은 감동을 서울의 남대문에서도 받았으면 좋겠다. 남대문 주변에 카페나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여유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광화문광장은 세종로를 6차선으로 줄이고 나무를 심어서 이전보다는 훨씬 더 우리의 일상을 담아내는 좋은 공간으로 변화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광화문광장은 이순신 동상에서 멈춰져 있다. 이 광장이 남대문까지 연장되었으면 좋겠다. 넓은 폭의 인도가 있는 광장에 앉아서 남대문을 가깝게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고 식사하는 여유를 가져보고 싶다. 자동차 교통은 외곽으로 유도하거나 지하도로를 뚫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행 친화적 광장이 남대문을 지나서 남산 성곽길까지 이어진다면 서울을 대표하는 축으로 완성될 수 있다. 남대문 앞에서 식사할 수 있게 도시 공간 개조가 필요하다.
리스본에 가면 천장이 무너진 성당이 있다. 오래된 도시 리스본은 1755년에 진도 9의 강진으로 대부분의 건축물이 무너졌다. 그 과정에서 리스본 성당의 천장이 무너져서 주일 예배에 참석한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무너진 도시 대부분은 재개발을 통해서 새롭게 만들어졌지만, 지붕이 무너진 성당은 재건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지금 가보면 벽체와 기둥과 보만 남겨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을 방문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성당 정면 앞에는 여느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작은 광장이 있다. 그런데 표를 끊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내부에서는 내가 기대한 것과는 반대되는 공간을 만났다. 일반적인 성당은 정문으로 들어가면 어둡고 큰 공간이 나를 맞이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광장보다 더 밝게 하늘을 향해 뚫린 공간이 있었다. 과거에 실내 공간이었던 벽체는 지금은 외부 벽체가 되어서 노출되어 있고, 과거에 지붕을 받치고 있던 기둥과 보는 마치 나무줄기와 가지처럼 서 있었다. 왼쪽 측면의 벽체는 다른 건물이 그 벽체에 이어서 건물을 지어 자신의 외벽으로 사용하고 있다. 과거 성당의 실내 벽면은 지금은 외부 벽면이 되었고, 외부 벽면은 신축된 건물의 실내 벽면이 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과거에 성당 내부로 햇빛을 들여오던 높은 창문은 지금은 옆 건물에서 성당을 내려다보는 창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런 변화는 전형적인 성당 공간보다도 더 살아있고 멋진 공간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새롭게 재구성된 리스본 성당의 공간을 세운상가에 적용해 보고 싶다. 세운상가는 종묘 앞 광장부터 을지로까지 길이 500미터나 되는 서울 도심 속 만리장성 슬럼이다. 세운상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어서 철거하기는 아깝다. 그런데 세운상가는 강북의 발전을 가로막는 흉물이기도 하다. 세운상가가 철거되고 종묘와 을지로를 연결하는 선형의 공원이 만들어진다면 서울 강북을 살리는 새로운 공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철거냐 보존이냐를 두고 시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좋은 디자인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리스본 성당처럼 세운상가의 외벽과 기둥만 남겨두고 철거하는 것이다. 이때 세운상가의 좌우 벽체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건축물의 외벽이 된다. 이렇게 하면 세운상가의 흔적은 남겨둘 수 있게 되고, 남아있는 세운상가의 벽과 기둥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원과 함께 어우러지게 된다. 이 공원은 과거의 건축과 미래의 자연이 하나로 융합된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공원이 될 것이다. 이렇게 광화문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보행자 축과 종묘에서 을지로까지 이어지는 녹지 축이 만들어지면 서울 강북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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