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한여름, 호러 소설을 읽다
거리에 아이, 불행은 당연한 걸까
공포란 역사·사회적 경험에 근거
타인을 외면하는 것이 가장 무서워
마리아나 엔리케스 ‘더러운 아이’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수록, 엄지영 옮김, 현대문학)
단편 ‘더러운 아이’의 시점인물인 나는 조부모가 살던 아름답고 유서 깊은 저택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한때 귀족들이 모여 살던 거리였지만 지금은 노숙자, 마약 거래상이나 중독자, 이교도들, 강도들이 많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위험한 동네가 되었지만. 나는 창문으로 집 맞은편 길모퉁이 거리에서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사는 여자와 아들을 보게 되었다. 자원봉사단의 손길도 닿지 않는 지역이었다. 지하철 승객들에게 구걸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저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씻겨주고 복지사에게 연락할 인정 많은 이가 아무도 없다고. 그때 나는 그런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어느 밤, 아이가 내 집 문을 두드렸다. 행색이 꼬질꼬질하고 몸에서 냄새가 진동하는 ‘더러운 아이’가. 엄마가 오지 않는 데다 배가 너무 고프다고. 아이가 음식을 다 먹자 나는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주려고 밖으로 같이 나간다. 가게까지 가는 동안 두 사람은 평생을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살아, 지금도 사람들이 제단을 만들고 명복을 비는 가우초(전설적 영웅)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아이는 뜻밖의 말을 한다. 기차역 ‘저 너머’에는 인자하지 않은 성상의 제단이 세워져 있다고. 아이의 말보다는 후덥지근한 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먹는 시커먼 맨발의 아이를 보며 나는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이런 불행한 이들의 삶을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지” 처음 느낀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 거리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작가는 어떤 집단이 이기심 때문에 한 어린아이를 살해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이 단편 소설을 썼다고 한다. 불평등으로 발생하는 폭력과 비인간성에 대해서. 그 희생자가 ‘더러운 아이’가 아니기를, 화자도 독자도 간절히 바라며 책장을 힘들게 넘기게 된다. 신문에 난 사진은 그 더러운 아이는 아니지만 나는 후회한다. 왜 다섯 살밖에 안 된 나이에 길바닥에 사는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았던 걸까? 사회복지사에게 연락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고 나는 기다린다. ‘더러운 아이’가 다시 찾아와 집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하기만을.
군사 독재 체제에서 어린 시절을 공포와 불안으로 보낸 작가는 그 감정들이 자신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고, “언어는 현실을 만들어 내고, 픽션은 진실” 밝힌다고 믿어 호러 소설을 쓰게 되었단다. “우리들의 공포, 그것은 대부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공포다”라는 그녀의 의미 있는 발언을 가장 잘 드러낸 단편이 ‘더러운 아이’가 아닐까. 그 아이의 이름은 무엇이었나. 버려진 아이,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지금도 안 보이는 어딘가에서 어른 같은 어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는데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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