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76] 에도시대 가이에키(改易)의 정치학
에도시대에 번의 영주인 다이묘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가이에키(改易)’였다. 가이에키란 쇼군이 다이묘의 영지를 박탈하거나, 축소 또는 변경하는 처분을 말한다. 가문과 그에 딸린 가신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떠돌이 신세가 될 수 있는 중벌 중의 중벌이다. 다이묘들은 가이에키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막부는 호시탐탐 가이에키의 기회를 엿보는 관계가 에도시대 막번체제의 정치 구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이에키의 사유로는 불충, 실정, 무례 등을 들 수 있다. 막부의 허가 없는 다이묘 간의 통혼(通婚), 축성(築城) 등 막법(幕法) 위반은 가장 중대한 사유다. 무능한 번정(藩政)으로 원성이 자자하여 잇키(一揆·백성의 저항운동)가 잇따르는 번도 막부가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다이묘 개인의 위법행위나 법도에 어긋난 칼부림 등도 사유가 될 수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주신구라(忠臣蔵)’의 배경이 이에 해당한다.
세사(世嗣) 단절, 즉 다이묘 궐위 시점에 막부의 승인을 받은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번도 가이에키의 대상이다. 에도시대 내내 원만한 권력 승계는 번의 존속을 위한 절체절명의 조건이었다. 속칭 ‘오이에소도(お家騒動)’라 불리는 주군과 가신 간의 알력이나 가신 세력 간의 파벌 싸움이 격화하여 추문이 외부로까지 알려지고, 이로 인해 막부의 개입과 가이에키 처분을 자초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번 내부의 갈등은 막부가 개입하기 껄끄러운 사안이다. 그러나 권력 싸움에 눈이 멀어 뒷일을 생각지 않고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비방과 폭로가 난무하면 막부에게는 그것이 절호의 찬스였다. 내분(內紛)으로 추태를 부리는 가문은 영지를 통치할 자격이 없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명대사 ‘이러다 다 죽어’ 경고를 떠올리게 하는 에도시대 가이에키 정치학의 본질은 현대 정치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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