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묵묵]그의 선물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
중증장애인 만나며 세상이 선명
세상의 무감각에 반응하기 시작
‘출근길 지하철’에 서 있는 이유
여러분께 선물 안겨드리고 싶다
내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경석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이다. 동료들과 만든 잡지 창간호에 그의 인터뷰를 싣고 싶었다. 당시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기어가던 장애인들의 시위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터였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문제는 날짜였다. 2001년 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이래 그는 바쁘지 않은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때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국회 통과를 앞둔 시점이라 더 바빴다. 날짜 잡기와 미루기가 반복되었다. 그가 바쁜 만큼 나도 초조했다. 인터뷰 날짜가 옮겨질 때마다 잡지 창간 일정이 옮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터뷰하기를 잘했다. 그날 나는 단번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그의 말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박경석이 이번에 책 <출근길 지하철>(위즈덤하우스)을 펴냈다. 부제가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이다. 이 부제는 내가 자주 보았던 풍경이기도 하다. 지하철플랫폼에서 그가 발언을 시작하면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곧바로 방해 방송을 시작한다. 그리고 열차가 도착하면 보안관들은 장애인들의 탑승을 막은 채, “일반승객 있어요?” “열차 타실 시민분 계세요?”를 외치며 비장애인들만을 탑승시킨다. 박경석의 말은 문 너머에 닿지 않는다. 탑승을 거부당한 동료들만이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보안관들은 이들을 아예 역사 바깥으로 끌어낸다.
벽이 되어버린 문 앞에서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했던 걸까. 이 책에는 당시 그가 했을 법한 말들이 담겨 있다. 왜 욕먹을 게 빤한 출근길 지하철 행동에 나섰는지, 왜 좀 더 온건한 방법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구하지 않았는지,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탈시설이나 권리중심일자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음을 알 것 같다. 그에게는 간절히 전하고픈 선물이 있었다. 한 편의 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천둥과 소낙비와 바람의 시. 이 시 한 편을 다 전할 수 없다면 폴 발레리가 쓴 한 줄의 시구라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 시구는 한 장애인 청년이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처음에는 무서웠고 다음에는 끔찍했던, 그러나 끈질기게 싸워왔던 어떤 것이 이제야 끝났음을 말해준다. 무감각 말이다.
이 이야기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행글라이더 사고로 하늘에서 추락한 청년. 정신을 차려보니 하반신에 감각이 없었다고 한다. 죽은 신체를 만지는 기분. 그는 믿기지 않는 듯 칼로 허벅지를 계속 그어댔다. 그러다 두려움이 엄습하면 감각이 남아 있는 팔을 담뱃불로 지졌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래서 팔이 항상 부어 있었다. 그런데 담뱃불에 지져진 팔이 다음에는 자포자기의 표시가 되었다. 자신은 그런 팔을 가지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그는 자기에 대해 무감각해졌고, 사람들에 대해 무감각해졌으며, 세상에 대해 무감각해졌다. 그는 애인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은 채 이별을 통보했다. 그때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책들도 알 수 없는 사물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떤 감각이 살아났다. 휠체어를 막아선 도로의 경계석, 그를 외면하는 버스와 택시, 어디선가 달려 나와 그를 놀리고 도망치는 아이들. 그는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장애인복지관을 다닐 때도 다리에는 여전히 감각이 없었지만, 어떤 무감각에 반응하는 예민한 감각이 생겨났다. 장애인들에 대한 세상의 무감각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천둥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장애인운동가 친구들이 죽던 날, 그들이 자신의 감각을 깨운 번개였다는 것을 뒤늦은 천둥소리로 알았다고.
이후 그는 노들야학에서 자신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차별의 무게를 짊어진 중증장애인들을 만났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들, 신변처리부터 모든 것을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 시설에 오래 갇혀 있던 사람들. 그들 한명 한명의 인생에 대해 들었다. 그러자 마음에 소낙비가 내렸다. 우리 사회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처분해왔던 사람들, 아무도 듣지 않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 이들에게 다가가자 세상이 선명해졌다. ‘모든 사람은 비용, 효율, 성과보다 존엄한 존재다.’ 싸움의 어느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고 했다. 삶의 감각이 돌아온 것이다. “제가 싸움의 현장에서 느끼는,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여러분에게도 선물로 안겨드리고 싶어요.” 자신과 타인과 세상에 무감각한 열차 앞에서 그는 이 선물을 들고 그렇게 외쳐댔던 것이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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