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친환경 장례

기자 2024. 7. 2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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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에 보통 새해 결심을 한다. 나는 유언장을 들여다보며 ‘새로고침’할 내용을 궁리한다. 이 사람은 올해 나랑 틀어졌지, 장기기증 스티커가 붙어 있던 주민등록증을 분실했으니 유언으로 남겨야지 등등 해마다 변동사항이 생긴다. 억만장자 아니고요. 남길 재산이라곤 개미 코딱지 정도 됩니다만.

죽음을 생각하기에 젊다면 젊은 내가 해마다 유언장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나답게 죽고 싶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나답게 산다는 게 뭔지 알기 위해 열라 시간을 쓰다 한참 나답게 살아보려고 하면 끝나는 거 같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나답게 죽는 법을 모색 중이다.

내 유언장에 적힌 장례식은 이렇다. 장례식장에 초대할 사람들 목록을 남길 테니 그 사람들만 부를 것, 내가 살던 집에서 장례를 치러줄 것, 부조금·일회용품·화환 등 번잡스러운 물건 반입 금지, 수목장 나무는 어렸을 때 앞마당에서 따 먹던 무화과나무로 할 것. 내 장례식을 부탁한 친구에게 대략 이야기도 해두었다. 메뉴도 골라두었다. 찐 고구마와 구운 야채의 저속노화 간식으로 간단히, 음료는 공정무역 커피와 차, 재사용 맥주 소주병으로 준비해주세요.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장례식장 이용률은 95~97%, 장례식당 조문객은 평균 250명이다. 조문객의 90%가 식사를 하고 조문객 4인 기준으로 사용하는 용기는 밥·국그릇 4개, 수저 4개, 반찬 접시 7~8개 정도다. 이를 국내 장례식에 적용하면 연간 용기류 1억3000만개, 접시류 1억1000만개, 식기류 1억3000만개이며, 약 2000t을 차지한다. 환경부는 장례식장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일회용품 사용 금지 업종을 ‘조리시설 및 세척시설’에서 ‘세척시설’로 개정할 계획이었다. 빈소에서 음식을 하지 않고 그릇에만 담는 경우 조리시설이 아니라 일회용품 금지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부는 이를 없는 일로 되돌렸다.

다회용기를 쓰기에 적합한 장소로 장례식장만 한 곳도 없다. 장례식 음식을 테이크아웃하거나 조문객이 그릇을 가져가 분실될 염려도 적다. 또한 상마다 많은 용기가 사용되므로 세척비도 저렴해진다. 즉 가두리 양식장에 일회용품을 가둬놓고 한 번에 잡아 없애는 것과 같다.

김해시는 전국 최초로 장례식장에 다회용기를 도입해 연간 63t의 일회용품 사용을 줄였고 춘천시도 다회용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처음엔 상주와 조문객의 반발을 걱정했지만 해보니 오히려 격조 있는 장례를 치르게 되어 상주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비행기에서도 비싼 퍼스트 클래스에만 다회용기를 사용한다. 또한 다회용기 세척업체가 알아서 해주니 설거지도 안 하고 쓰레기도 훨씬 덜 나온다.

조만간 장례식장에서 내 장례를 치르라고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든 장례식장에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되고 채식 육개장을 선택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일회용품이 금지되면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만 공짜로 받는다는 회사 이름 쓰인 일회용품도 사라지겠지? 실은 내 진짜 로망은 몽골식 ‘조장’이다. 내 살이 되어준 동물들처럼 나도 죽어서 새들의 먹이가 되고 싶다. 내 시신이 화학처리와 견고한 관이나 도자기 안이 아니라 흙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지구를 위해서는 물론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서, 나답게 죽고 싶어서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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