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33) 유성온천 만년장

기자 2024. 7. 2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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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간 국민들 ‘때’ 밀어줬던 곳, 이제 ‘그때’는 추억 속으로
유성온천 만년장 1971년(왼쪽)과 유성온천 만년장(신축호텔 리베라유성) 터 2024년 |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건물이 철거돼 터만 남은 2024년 사진은 ‘만년장’이 있던 곳이다. 1958년 대전 유성구 유성온천에서 장급 호텔로 개업한 만년장(萬年莊)의 한자표기인 장(莊)은 ‘장소를 뜻하는 장(場)’이 아닌 ‘풀이 성할 장(莊)’으로, 별장·산장 등 고급스러운 것을 의미하는 접미사다. 만년장은 현재 흔적조차 없다. 철거하면서 부서진 건물더미 잔해 속에 파편처럼 묻혀 있는 단어들로 유성온천의 역사 퍼즐을 맞춰본다.

[전설] 백제 말에 날개에 상처를 입은 학(鶴)이 눈이 녹아 생긴 뜨거운 물웅덩이에 며칠간 몸을 담그고 나서 훨훨 날아갔다는 전설이 유성온천의 유래로 전해진다.

[환장] “피부병, 신경통 등을 치료하고 음용 시, 위장병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온천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에 온천 휴양지로 개발했다. 개발 전에는 뜨거운 물이 땅 위로 솟구쳐 나와 겨울철 아낙네들이 환호한 빨래터였다.

[방문객] 조선의 도읍지를 물색하던 이성계가 온천 목욕을 했고 해방 후 만년장의 단골손님이었던 박정희는 대통령 전용 탕까지 있었다. 국민들이 목욕을 연례행사로 하고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에 유성온천은 신혼여행지로도 각광받았다.

[불야성] 만년장 건물이 1988년에 헐리고 고층 호텔 리베라유성이 신축됐다. 88 서울 올림픽 당시 유성지역 호텔들은 대전 선수촌으로 사용됐다. 1993년 대전 엑스포 행사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화산이 폭발하듯 1994년에 유성온천 일대가 야간영업 제한이 없는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365일 불이 꺼지지 않고 물이 식지 않는 문전성시 관광지가 됐다.

[몰락] 그러나 1999년에 관광특구가 해제된다. 전국적으로 집집마다 온수가 나오는 샤워시설을 갖춘 아파트가 건설되고 찜질방에 불가마까지 겸비한 대형 사우나도 등장했다. 여기에 겨울철에도 야외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워터파크까지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유성온천의 관광 열기는 급랭했다. 차갑게 식어버린 지역경제로 만수장 자리에 세워졌던 호텔 리베라유성도 폐업하고 2017년에 건물이 철거됐다.

[전설]부터 [몰락]까지 이야기가 약 100년 동안 국민들이 ‘때’를 밀어 흥했던 유성의 온천역사를 보여준다. 인생이든 사업이든 다 때가 있다. 백년도 못 사는 인간이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이름 지은 ‘만년장’의 사진을 보면 멸망한 고려의 도읍 터 개경을 돌아보며 길재가 지은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의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구절이 떠오른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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