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의 외교만사 外交萬思]급변하는 세계에 한국 외교의 비상을 꿈꾼다

기자 2024. 7. 2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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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냉전 종식 직후,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의 승리로 인류 역사는 종결되었다고 선언한 바 있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은 중국의 부상 속도에 크게 놀랐고, 점차 자유주의에 입각한 헤게모니 국제질서에 대한 신념을 잃어갔다. 급기야 미국 바이든 정부는 세계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이러한 수사마저도 대외관계에 적용하는 것은 조심스러워한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다면, 이데올로기적인 대외관계 규정은 자국 보호주의와 실용주의 관점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국제관계 분야에서 냉전의 종식은 자유주의에 대한 과도한 확신과 권위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폄훼 현상을 낳았다. 당시 대표적인 분석 중 하나가 매튜 에반제리스타 교수가 1988년에 쓴 <냉전시대 미·소 군비경쟁에 대한 연구>였다. 체제적인 특성으로 인해, 미국은 혁신적이고 주도적인 연구와 역량 구축이 가능하고, 소련은 비효율적이고 반응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1992년 야노스 코르나이 교수는 저서 <The Socialist System>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구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회주의 체제는 자유주의 체제와는 달리 본질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정확한 정보의 획득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관료화가 진행되고, 그 체제 비용이 생산성을 크게 앞서면서, 결국 붕괴된다는 논리이다. 당시 이들의 연구는 동시다발적인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현상을 적절하게 설명한 연구로 크게 각광을 받았다.

중, 미·서방보다 영향력 더 커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오늘날에도 적용되어 사회주의와 권위주의를 동일시하고, 이에 입각해 대외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의 시기에도 구소련과 중국을 동일 연장선에서 이해한다. 체제 우월성이라는 선입견을 전제로 중국을 분석하면, 과장되고 부정적인 측면만이 강조된다. 분석은 중국 체제나 정부의 붕괴, 미·중 전략경쟁에서 미국의 궁극적인 승리로 귀결된다.

권위주의 체제는 이데올로기적인 요소가 강한 사회주의보다 훨씬 더 유연할 수 있다. 세력전이 이론으로 유명한 AFK 오르간스키 교수는 권위주의 체제가 자유주의 체제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이란 점을 지적한 바도 있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가진 중국과 북한 정권수립 초기 시절, 한국의 박정희 시기에 이룩한 빠른 경제발전의 성과가 이를 설명한다. 다만, 독재정부는 지도자의 오판이나 부패의 비용이 크고, 일정 시점에 이르면 국내적 저항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여 결국은 그 체제적 비용이 이점을 상쇄하게 된다.

현 중국 지도부는 세계 어느 지도자 못지않게 정보의 양과 질을 확보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 중국은 디지털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국가이다. 과거의 계획경제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정보를 획득하고 장악한다. 아주 오랫동안 중국의 정치국원들은 매달 모여 핵심 이슈들에 대한 전문가의 발제를 듣고 토론을 거듭해 왔다. 시진핑은 다양한 경로로 올라오는 보고서를 읽는데 거의 모든 오전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피스(批示)”라 하여 본인의 의견을 전달하는 글도 종종 필진에게 남긴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예외 없이 일중독이다. 중국 관료들은 승진을 위해 단계마다 상하의 평가는 물론 동료들의 평가까지 통과해야 해서 뛰어난 역량뿐 아니라 대인관계에게서도 달인들이다. 중국의 주요 부처들은 강력한 싱크탱크들을 보유하고 있어 끊임없이 전문적인 의견을 청취하고 분석 자료를 받는다. 중국이 지닌 주요한 강점들은 종종 미국도 간과했고, 서구적인 과학적 통계분석으로는 잡히지 않는다.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민주주의 관련 보고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세계적으로 미국이나 서방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호주의 보수적인 전략정책연구소(ASPI)가 분석한 최근 과학기술 수준 보고서는 미래 핵심과학·기술영역에서 중국이 44개 분야 중 37개 분야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세계 200여개국 중 150여개국이 가입하거나 협력하고 있다. 중국이 속했다고 주장하는 글로벌 사우스의 인구는 세계 60%, GDP의 40%를 차지하고 더욱 확대 중이다. 세계의 미래 경제성장 동력은 이들 국가에서 나올 것이다.

현 국제관계 냉정한 판단 필요

트럼프나 카멀라 해리스 중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중국에 대한 경쟁과 대응책 마련은 불가피하다. 냉전시기 사회주의에 대한 자유주의 승리라는 관습적 태도가 오늘날 많은 이들의 중국에 대한 객관적 분석력을 흐리게 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중국에 대한 대비책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지지하는 국가들은 자유연대를 추구하려 하지만 이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정치 현실주의자들은 미·중 갈등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 동맹과 편승의 양 극단 사이 그 어딘가에서 헤징(hedging·위험 회피) 정책을 추구할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노선을 따른다. 반서구주의자들은 균형, 아시아 중심성, 대안적 세계질서를 추구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외정책에서 서구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선호도가 강하고 이념적이다. 이 경우 중국과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자유주의 질서를 부정하고 자국 중심주의를 크게 강화하려 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외교능력은 본격적인 시험대에 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자부심을 느끼고 사랑하지만, 국제관계의 핵심은 정의나 이상의 구현이 아니라 국가 이익의 실현에 달려 있다. 이 세계는 신(神)의 영역이 아니라 속(俗)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획득하는 정보의 질과 양에 따라 현재의 국제관계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할 역량이 생긴다. 미국 대선을 계기로 선입견에 사로잡힌 선무당들의 시대는 종결되어야 한다. 어둠이 내리면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본격적으로 비상하기 시작한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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