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땅을 일궈 피워낸 생명력…영국판 ‘야생초 편지’[책과 삶]
들풀의 구원
빅토리아 베넷 지음 | 김명남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 428쪽 | 1만8000원
중년을 앞둔 무명 시인 빅토리아 베넷은 갑작스러운 삶의 풍파를 겪는다. 몇번의 유산 끝에 겨우 가진 아이의 출산을 두 달 남기고 사랑하는 큰언니의 비극을 전해 듣는다. 강에서 카누를 타다 익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슬픔을 딛고 출산했으나 아이가 어딘지 아픈 것 같았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동네 병원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찾아간 대형 병원에서 아이는 제1형 당뇨를 진단받는다. 평생 음식을 가려 먹고 치료를 받고 자칫 잘못하면 손이나 발이 괴사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진 채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극빈하진 않았지만 풍족한 삶과도 거리가 멀었던 베넷은 잉글랜드 컴브리아주 시골 마을의 공공주택단지로 이사한다. 과거 공장 터에 지어진 단지 마당은 온통 돌무더기였고, 땅속엔 철근과 석면이 숨어 있었다. 성마르고 쓸데없이 참견하는 이웃도 많았다. 베넷은 묵묵히 어린 아들과 함께 정원을 만들었다. 영국인들이 집착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은 아니었다. 음식물 찌꺼기로 퇴비를 만들고, 들풀의 씨앗을 모아 심었다.
베넷의 정원에 자라는 식물은 다른 사람 눈에는 ‘잡초’에 가까울 수 있다. 물론 ‘잡초’란 인간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 쐐기풀, 미역취, 수선화, 석잠풀이 정원을 채웠다. 생명력 넘치는 들풀들이 씩씩하게 자라듯이, 홈스쿨링하는 아이도 정원을 가꾸며 별다른 위험 없이 자랐다.
책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 병상의 어머니를 돌보는 몇달간 정원은 방치됐다. 거의 야생으로 돌아갔던 정원은 때마침 닥친 홍수에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상관없다. “다시 정원을 본다. 정원은 내가 없었는데도, 또 홍수를 겪었는데도 살아남았다. 정원은 아직 남은 것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들풀 90가지의 이름과 모습, 쓰임새와 의미가 쓰여 있다. 다만 이 책은 자가 진단이나 치료를 위한 안내서가 아니므로, 전문가와 상의 없이 식물을 채취하거나 먹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실려 있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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