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개원식 무산이 비통한 이들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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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연 지 약 두달이 된 22대 국회에 대한 언론 보도에는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여당의 불참 속에 야당 단독으로 국회가 개원하고,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야당 단독으로 선출한 것 모두 최초다.
제헌절이 지나도록 국회 개원식을 열지 못한 것도 헌정사상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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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연 | 정치팀 기자
문을 연 지 약 두달이 된 22대 국회에 대한 언론 보도에는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여당의 불참 속에 야당 단독으로 국회가 개원하고,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야당 단독으로 선출한 것 모두 최초다. 최근엔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민동의청원을 이유로 한 청문회도 열렸다. 국회법을 해석하고(입법조사처) 국회 운영에 적용해야 하는(의사국) 이들은 자주 난감해진다. 국회를 다룬 학술도서도 싹 다 개정해야 할 판이다.
제헌절이 지나도록 국회 개원식을 열지 못한 것도 헌정사상 최초다. 새 국회의 시작을 알리는 개원식은 법률에 규정돼 있지 않지만, 국회의원이 자신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국회법 24조)을 선서하고 대통령이 국회와 협치를 선언하는 중요한 관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3대 국회 개원식에서 “새 공화국의 정부와 국회는 국민이 바라는 바와 나라를 위한 과제들을 함께 해결해가는 동반자”라고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해서 중요 국사를 대화 속에 추진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성의와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개원식 거부 이유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청원 청문회가 진행돼 대통령을 ‘손님’으로 모실 수 없다고 했다. 최후의 수단인 거부권(재의요구권)을 열다섯 차례나 행사한 윤 대통령에겐 국회와 잘 소통하겠다는 다짐이 영 마뜩잖을 것이다. 그러나 ‘불통’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대 국회 개원식에서는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국회를 존중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여야가 합의했던 개원식을 무산시킨 건 국민의힘”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의 말대로 정부·여당은 몽니를 부리고 있다. 그래도 ‘정치의 실패’라는 혐의에서 야당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22대 국회 들어서 “법대로 하자”며 정치 행위를 여러번 포기했기 때문이다.
개원식이 대수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수가 아닌 일도 못 한 국회가 다른 조정을 제대로 할 리 없다. 최근 여당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방송 4법’ 중재안을 걷어찼다. 우원식 의장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여당은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을 중단하고 야당은 방송 4법을 여당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며 사회적 논의기구인 범국민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가 공영방송을 전리품 다루듯 하는 악순환을 끊어낼 기회였다.
그러나 한국방송(KBS)과 와이티엔(YTN)에 이어 문화방송(MBC) 장악까지 눈앞에 둔 정부·여당에 중재안은 한가한 소리에 불과했다. 야당도 중재 불발에 아쉬워하는 기색은 없다. 거대 의석으로 속도감 있는 국회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게 이번 ‘총선의 민심’이니까. 그렇게 대통령의 열여섯번째 거부권 행사라는 진부한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개원식 무산으로 아쉬움을 삼키는 이들은 따로 있다. 우 의장이 개원식에 초청하기로 한 세월호·이태원 등 사회적 참사와 산업재해 유족, 반민특위 후손 등이다. 퇴장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방청석에서 짧은 울분을 터뜨려보고 싶었을 이들이다. 정부에 외면당한 이들을 위로하겠다는 의장의 작은 의지마저 실현되기 어려운 게 지금의 국회다. 비통한 자들은 정치의 실패로 더 비통해지고 있다.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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