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이 제 영혼을 좀먹습니다 [이경자 칼럼]

한겨레 2024. 7. 2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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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 젊은이들에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아이 낳으면 아파트도 주고 돈도 주고 학교 공부도 시켜주겠다고… 그런 뉴스가 들립니다. 세상만사, 걱정거리 중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가장 쉬운 일이라고도 합니다.

이경자 | 소설가

시인 후배가 에이아이(AI)에게 신경림 선생님의 약력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에이아이가 대답했습니다. 그 원고를 받아 읽었는데 틀린 것이 많았습니다. 저같이 일흔을 넘긴 세대는 그 답변에 틀린 것이 많다는 걸 알겠지만 수십년이 흐른 뒤, 틀린 것과 맞는 것을 구별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끼쳤습니다. 인공지능을 믿고 그가 시키는 대로 가고 그가 알려주는 대로 믿고 살게 된다면, 그래서 사람이 더 이상 생각하려 하지 않게 되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농경시대의 끝자락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감각이나 욕구의 근원이 다 농경시대의 문화에 각인돼 있습니다. 가치척도나 생활감정, 모든 것이 전자기술 시대와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익숙해지지 않고 낯설어 두렵기만 합니다. 심지어 도태되는 열패감마저 듭니다. 이런 열패감은 제 생명의 에너지를 풀 죽게 하고 슬픔과 소외로 내몹니다.

컴퓨터로 원고를 쓴 지 오래됐지만, 컴퓨터의 세계, 그러니까 컴퓨터의 내장, 그들의 연결 고리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벌써 몇년 전부터 컴퓨터 학원에 다녀야겠다, 생각은 간절했지만 그렇게 못 하고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범위는 아주 간단해서 원고를 작성하고 보내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무슨 뉴스 같은 걸 보고 유튜브를 보는 정도입니다. 휴대전화를 쓴 지도 꽤 됐습니다.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고 사진을 찍고 저장하고 전송하는 수준이 제 유식함의 전부입니다.

저는 문명의 이기라는 것들의 기능에 친숙해지기보다는 새로운 두려움에 갇히는 기분입니다. 아는 것은 적은데 뭔가 새로운 것들이 자꾸만 생기니까 지식의 소화불량에 걸린 것입니다. 컴퓨터나 휴대폰의 복잡한 내장 기재들의 이름은 전부 영어나 기술용어로 되어 있으니 이해가 불가능하고, 불가능하니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무슨 바이러스, 보이스 피싱, 스팸이니 하는 것들. 모두 새로운 범죄인데 그 침투 경로와 그것의 광대한 역할은 제 상상의 능력이 가닿지 못하는 곳에 있으니 발전을 거듭하는 전자기술은 저에게 나쁜 신(神)이나 다름없습니다.

문명의 이기만이 아닙니다. 제가 광고를 보는 조건으로 무료 공부를 하는데, 그 광고들이 저를 두렵게 합니다. 너무도 솔깃해지게 하는 광고들. 하루에 얼마를 번다, 얼굴이 어떻게 예뻐진다, 몸이 이토록 날씬해진다, 이보다 더 좋고 값싼 옷은 없다, 이보다 더 훌륭한 의사, 병원, 싼 해외여행, 호텔, 항공권, 이렇게 해야 돈 번다는 주식 구매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 모두에 좋은 것들이 널려 있다는데 그것을 잘못 누르면 통장이 털리고 개인정보가 털린답니다. 사기(詐欺)의 그물 속에 있는 피라미 느낌이라 존재가 가련하도록 초라해집니다.

지하철을 탔습니다. 대낮인데 장애인 자리에 젊은이가 눕듯이 앉아 있습니다. 자리를 양보해 달라기는커녕 두려워서 다른 칸으로 갔습니다. 옆에 앉은 사람이 자꾸 기침을 했습니다. 코로나라는 질병 이후 다른 사람의 기침은 두려움이 됐습니다.

승강기에서 내리는데 문 앞에 바투 서서 기다리던 젊은 남자가 아주 불쾌한 호흡 소리를 내며 승강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단박에 그의 울화가 느껴졌고 저는 불안해졌습니다. 울화가 가득 찬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공간을 상상했습니다.

아침 여섯시가 되기 전에 4호선과 2호선을 탔습니다. 대부분 중·장년층. 청소할 건물이나 식당 주방, 건설현장 등등으로 가는 중일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 어른들 사이에 술이 덜 깬 젊은이, 화려한 화장이 지워지다가 만 젊은 여성이 몸을 비틀고 잠들어 있습니다. 지하철의 승객들. 무슨 일을 하건, 아무도 당당하고 씩씩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친 표정에 불만이 깊게 스며든 삶의 무게가 지하철에 가득, 느껴졌습니다. 누가 해결해주지? 정부가?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240명 정도였던 초등학교. 거의 70년이 지난 올해 신입생이 딱 70명. 학교 건물은 현대식. 춥고 더운 것을 모른 채 언제나 쾌적한 교실. 권위와 권력의 상징 같아서 무턱대고 싫기만 했던 교장 선생님은 어린 학생들이 사탕을 얻고 싶어 찾는 교장실이 되었습니다. 권력과 권위의 길이와 높이가 아주 많이 낮아지고 가라앉았어도 교사는 교사의 권리를, 학생은 학생의 권리를 다투는 곳이 되어갑니다.

제가 사는 곳은 북한산 자락. 비행기 소음이 들립니다. 등산객의 추락사고일 가능성이 크지만 먼저 가슴이 철렁합니다. 비행기 소리가 제 내면에 유전자처럼 들어앉은 공포를 아무렇지 않게 건드린 것 같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자주 듣게 되는 ‘힘’, ‘평화는 힘으로부터’ 같은 표현에서 저는 안정감보다 두려움이 더 잘 감각되니, 하여간 큰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휴전 중인 나라인 걸 감출 수는 없습니다. 전쟁이 가능한 곳으로, 한반도를 점찍는 ‘대단한 권력’들이 존재하니까요. 전쟁은 너무도 무섭습니다. 공포라는 말로는 설명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인명살상을 일상적인 행위로, 적으로 규정한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혹은 그 종족을 말살시키는 것. 지옥이란 단어가 있네요.

지옥이어야만 할까요? 가슴이 싸아하게 아립니다. 지구 공동체의 인류를 그저 내 편 네 편으로만 나누는 정신은 야만이라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적대적 관계로만 이해하고 그에 상응하는 지배와 종속, 보복과 항복으로 설정해온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절로 괴멸할지도 몰라….

존재하는 것은 모두 고유해서 다르고, 그래서 평등하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나쁜 사람이 되나요?

나라에서 젊은이들에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아이 낳으면 아파트도 주고 돈도 주고 학교 공부도 시켜주겠다고… 그런 뉴스가 들립니다. 세상만사, 걱정거리 중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가장 쉬운 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준다는 가장 쉬운 방법, 돈으로 해결하는 그 돈은 바로 우리가 낸 돈입니다. 그 돈을 버느라 갖은 수모에 목숨을 갉아먹히는 노역을 합니다. 그런 일자리라도 잃을까 전전긍긍. 이런 세금을 ‘인심 쓰듯’ 쓰는 정책은 죄송하지만, 파렴치하게 느껴집니다. 정책과 행정의 사치, 혹은 허영 같기도 하고요. 하여간 이래서 저는 하루하루 만성불안신경증에 존재를 갉아먹히는 중입니다. 무식해서 그렇기도 하고, 이런 현실에 거부감이 심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불안감은 제 영혼을 좀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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