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견을 듣는다] "韓, AI칩 한발 늦어… `내손안의 AI` 먼저 만드는데 패권 달려"

강현철 2024. 7. 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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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 위기… '반도체·AI 국가위원회' 설립, '소버린 AI' 집중 필요
우리 사회 유연함 잃고 경직되어가… 수평적 리더십으로 다양성 흡수해야
지도자는 통찰력과 비전·소통 능력 필요… 협치 없인 대한민국 미래 없어
정치, 어려운 사람 눈물 닦아주는 것… 요즘 국회는 국민갈등 더 증폭시켜
트럼프 당선될 경우 무역 관계 터프해질 것, 철저한 대비책 미리 마련해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박영선 前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정치의 역할은 어려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인데 요즘 우리 정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점점 더 퇴보하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는 갈등을 더 증폭시키는 게 국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박영선(64)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말이다. 25일 서울 중구 디지털타임스 회의실에서 만난 박 전 장관은 국내외 정치경제와 대한민국의 지향점을 묻는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을 쏟아냈다. 제17~20대 4선 국회의원으로 헌정 사상 첫 여성 법사위원장, 여성 원내대표도 역임한 거물 정치인이지만 정치보다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에 대해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 사회의 양 극단화는 단순한 사회현상이 아니다"며 "협치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다. 또한 "국가 지도자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비전, 그리고 소통능력이 필요하다"며 "지시 위주의 수직적 리더십이 아닌 수평적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우리 사회가 유연함을 잃고 경직돼가고 있는 점에 대해 특히 우려했다. 사회가 딱딱해지면서 다양성을 흡수하지 못하고, 경쟁력 또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 고배를 마신 후 미국으로 건너가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고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지내면서 특히 AI와 반도체 부문에 천착했다. 박 전 장관은 "한국이 메모리 분야에서 절대 강자이지만 AI칩에서는 한발 늦었다"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공을 위해선 전력과 용수 공급방안 등 장기 플랜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AI 시장은 누가 '내 손안의 AI'를 먼저 만들 것인가가 관건"이라며 "노태우 정부의 미래 먹거리 G7 프로젝트(선도기술개발사업)를 본 뜬 'G7 프로젝트 2.0'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전 장관은 MBC 경제부장, LA특파원, 앵커를 거쳐 정계에 입문해 서울 구로을에서 내리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민주당 정책위의장,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도 역임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건 문재인 정부 시절이다. 2017년 17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약했다. 베스트 셀러가 된 'AI, 신들의 전쟁'을 비롯해 '반도체 주권 국가',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라', '누가 지도자인가', '박영선, 서울을 걷다' 등 여러 저서가 있다.

대담 = 강현철 논설실장

- 22대 국회가 임기 시작 두달 가까이 됐는데도 아직 개회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국회와 비교해 22대 국회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제가 2004년도 17대 국회의원부터 정치인 생활을 했습니다. 딱 20년이 됐어요. 그런데 되돌아보면 국회는 점점 퇴보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눈앞에 펼쳐지는 갈등을 더 증폭시키는 것이 국회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 '두 도시 이야기'처럼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협치가 중요하다는 뜻인데 현재의 여야 갈등 상황을 풀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요?

"SNS에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인용해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두 도시 이야기'가 쓰여진 시기는 1차 산업혁명이 끝나고 바퀴로 마차를 만들던 시기 직후였습니다. 파리와 런던을 비교해 시대 상황을 그린 겁니다. 당시에는 마차를 가진 자와 그러지 못한 자로 양극화됐습니다. 마차를 탄 귀족들이 동네를 지나가게 되면 아이들이 뛰어나옵니다. 그런데 마부가 말을 멈추지 않아 바퀴에 아이들이 깔려 죽습니다. 그런데도 마차에 타고 있는 귀족은 내리지 않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칩니다. 서민 엄마는 말도 못하고 죽어 있는 아이를 부둥켜 안고 그냥 울기만 할 뿐이에요. 소설을 읽으면서 1700년대의 사회상이나 지금의 사회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당시가 1차 산업혁명 직후였죠. 2차 산업혁명 직후에는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지금은 3·4차 산업혁명, 기술혁명을 겪고 있는데 사회가 양극단화되고 있습니다. 협치하지 않으면 나라가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과 우려가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이를 보듬고 가야지 그렇지 않고 팬덤 정치에 휩쓸려 지지층이 원하는 이야기만 하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국회가 용광로처럼 녹여야 되는데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게 아쉽습니다."

- 4선 의원도 하시고 정치를 오래 하셨는데요. 정치의 요체, 정치의 역할은 뭘까요?

"정치는 어려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겁니다. 마차를 가진 귀족들은 국가가 보호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는 스스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부대끼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이야기도 들어주며, 그들과 함께 가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동양의 정치철학인 '여민동락'(與民同樂)과 같은 맥락의 말씀이시군요. 리더십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바람직한 국가 지도자상은 무엇입니까?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 미래 비전이 국가 지도자가 가져야 될 요소 중 하나입니다. 둘째는 소통하는 지도자입니다. 이 두가지가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 윤석열 정부에 대한 얘기를 여쭤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지금 임기가 2년을 넘겼습니다. 그동안의 국정운영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는 지지율이 대변해 준다고 봅니다. 저는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대한민국이 좀 경직돼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회가 유연하고, 조직 자체도 유연하게 굴러가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입니다. 또 다양성을 흡수할 수 있어야 됩니다. 다양성의 흡수와 유연함 두가지가 많이 결여돼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교육은 암기 위주입니다. AI 시대는 AI가 암기를 대신할 수 있죠. 인간은 더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유연해지지 않으면 안되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와 사회가 경직되고, 공무원 사회 또한 딱딱해져 간다고 할까요? 신문을 보면 대통령이나 총리께서 지시한다는 문장이 자주 나오는데, 지시한다는 건 '수직적 리더십'입니다. 1·2차 산업혁명 시대의 과거형 리더십이죠. AI시대엔 '수평적 리더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을 잃을 것입니다. 기업이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우리 기업들이 좀 힘들어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기업문화가 유연하지 못하고 딱딱하며 수직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글로벌 기업과의 차이입니다.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애플을 비교해 볼때 유형자산은 애플이 삼성전자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렇지만 무형자산, 소프트웨어에선 애플이 훨씬 앞서죠. 우리는 아직까지도 소프트웨어 무형자산 부분이 글로벌 기업에 비해 적습니다. 이를 키워 나가지 않으면 국민소득 5만달러 가기가 힘들죠."

- 저출생, 잠재성장률의 하락, 양극화 심화, 국가부채 누적 등 우리 경제의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국무총리 후보 물망에도 오르셨는데 '박영선표 경제정책'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정치인 생활을 시작하면서 재벌 개혁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당시 저의 어젠다는 지배구조 개혁이었습니다. 제가 미국 특파원을 하면서 미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비결이 무엇이냐를 따져봤는데 하나는 반독점이고, 또하나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였습니다. 그래서 금산분리법을 제가 2006년도에 국회에서 통과시켰죠. 그때문에 삼성 등 재벌 기업들이 지배구조를 개선하느라고 고통을 겪긴 했습니다만, 이것은 저의 브랜드이자 보람 중 하나입니다. 순환출자 문제 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 중 하나였는데 지배구조 문제가 많이 해소됐습니다. 당시 금산분리법을 통과시키지 않았으면 대한민국 경제가 이 정도까지 투명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는 주머니돈이 쌈짓돈 되고 그랬던 시절이니까요. 이는 곧 경제 정의와 공정의 문제입니다.. 경제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살리는 입법 활동을 국회의원으로서 꾸준히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돼서 주목했던 건 대기업의 자본과 스타트업이나 벤처 중소기업들의 기술력을 어떻게 분업적 협력 구조로 가져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IT 혁명과 AI 혁명, 디지털 혁명 시대 어떻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조화를 이루면서 같이 발전할 수 있을까가 가장 중요한 어젠다였으며, 제가 내건 캐치프레이즈가 '디지털 경제로의 대전환'이었습니다."

- 미국 하버드대에서 반도체와 AI분야에 대한 연구활동 후 귀국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AI, 신들의 전쟁', '반도체 주권국가' 등의 저서도 내놓으셨는데 반도체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을 모색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우리 반도체와 AI 산업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은 메모리 세계 최강국이죠. 그런데 이제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판이 바뀌고 있습니다. AI칩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인데 우리가 한 발 늦었죠. 2019년 장관 시절 삼성과 SK하이닉스에 반도체 설계를 중소 스타트업 벤처와 같이 하는 협업체계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두 회사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하는 세계적 반도체 설계기업 암(Arm)에 제안했더니 그 다음날 하자고 답변이 오더군요. 중소벤처기업부가 암의 오픈소스를 이용해 국내 반도체 설계회사 10곳을 선정했습니다. 암이 10개사에 투자했는데 지금 잘 나가고 있는 회사가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입니다. 또 문재인 정부에서 지자체 지원을 위해 각 지자체한테 한가지 아이템을 내면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들어주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대부분 지자체들은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 프로젝트를 써냈는데 유일하게 광주만 AI 데이터센터 슈퍼컴을 만들겠다고 3200억원을 신청했습니다. 무슨 지자체가 AI를 하느냐며 3200억원의 예산을 주는데 대한 반대 의견이 상당히 있었는데 저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대기업들이 슈퍼컴에 투자를 해야 된다며 삼성 LG 네이버 등과 대화를 많이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투자를 하긴 했는데 확실하게는 못했습니다."

- 국내 기업들의 대응이 늦었다는 얘기군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파운데이션 모델'이 없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발되고 학습된 다목적 모델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를 '내 손 안의 컴퓨터'로 만든 게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2023년이 챗GPT가 AI의 기술혁명을 세상에 알린 시기라면 2024년은 AI의 산업 경쟁 시대가 열린 해입니다. 누가 '내 손안의 AI' , '온디바이스 AI'를 먼저 만드느냐는 경쟁이 시작된 거고, 이를 산업화하고 소비자한테 가장 쉽게 전달하는 자가 최종 승자가 될 겁니다. 우리 기업들이 파운데이션 모델은 없지만 디바이스 만들던 노하우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이 디바이스를 어떻게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손 안에 AI로 쥐어질 수 있느냐 이 경쟁을 해야 됩니다. 그 경쟁의 핵심이 바로 소프트웨어 개발입니다. 이를 해서는 기업도 국가도 사회도 유연하게 바꿔야 합니다."

- '내 손 안의 AI'를 누가 먼저 장악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반도체·AI분야에서 한국이 세계 리딩국가가 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파운데이션 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게 '소버린 AI'(Sovereign AI)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소버린은 주권이라는 뜻이죠. 각 국가가 독자적으로 자기네 나라의 데이터를 활용해 특화된 AI를 만드는 거죠. 소버린 AI를 만드는 것은 단순하게 슈퍼컴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데이터센터가 있어야 하고, 데이터를 활용하는 유저들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에 데이터 생태계와 AI를 잘 훈련시킬 수 있는 엔지니어가 필요해요. 딥러닝 그러니까 LLM(대규모 언어 모델)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두번째로 중요한 게 전력입니다. 전력 문제를 어떻게 할 건지 국가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반도체·AI 국가위원회'를 설립해 정부, 민간, 학계가 모여 대한민국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야 합니다. 국가위원회는 여야나 정권에 상관없이 갈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노태우 정부 후기 'G7 프로젝트'라는 걸 했어요. 10년 프로젝트였죠. 그 프로젝트에 반도체, 자율주행, 반도체, 양자컴, 배터리 등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제 'G7 프로젝트 2.0'이 필요합니다."

- 윤석열 정부도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로선 외국과 비교해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 불만이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윤 정부가 반도체와 관련해 여러 지원 정책을 발표했는데 핵심이 빠져 있다고 봅니다. 바로 전력 문제로, 디테일이 나와 있지 않거든요. 일본의 홋카이도 실리콘 단지는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합니다. 미국의 반도체 공장이 세워지는 곳도 상당수가 재생 에너지입니다. 우리도 전력 문제에 대한 장기 플랜이 있어야 됩니다. 저는 100% 재생에너지로 하기에는 우리 여건이 유리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에너지로 갈 것인지에 대한 포트폴리오 구성 방안을 세워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과 용수 문제가 현재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윤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소형모듈원전(SMR)나 원전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송배선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과 비용 등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 얼마전 '중소기업 글로벌 명예대사'로 위촉됐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는 한국 경제의 취약점 중 하나입니다. 격차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기술력의 시대입니다. 중소기업, 스타트업 벤처 회사들에게 기술 개발을 위한 R&D(연구개발) 자금을 충분히 줄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이 제조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중소기업에게 R&D 자금을 충분하게 줬기 때문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시절 독일의 경제부 장관을 만나 어떻게 해서 독일이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가 됐느냐고 물었더니 답변이 뜻밖이었습니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계속해 물을 부어줘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도 그 말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미국도 보면 R&D 자금 1단계는 씨앗을 뿌린다는 뜻에서 프로젝트 신청을 하면 거의 다 줍니다. 2단계 3단계 올라가기가 굉장히 힘들죠. 성과가 있어야 되니까. 우리도 R&D 자금에 대한 콘셉트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 '박영선과 대전환', '박영선, 서울을 걷다' 등의 저서를 쓰는 등 도시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의 도시 경쟁력은 어떻게 평가하시고, 어떤 부분을 보완하는 게 필요할까요?

" 외국 사람들은 교통망, 안전, 먹거리 등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예를 들어 교육이라든가 녹지 확보 문제라든가 이런 데는 많이 낙후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21년도 서울시장 보궐선거 나왔을 때 내건 캐치 프레이즈가 '21분 도시 서울'이었습니다. 21분 안에 직주 근접, 그러니까 직장과 주거를 가깝게 하고 가능하면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게 하면서 공원을 많이 만드는 겁니다. 수직 정원도 제안을 했죠. 오세훈 시장이 요새 보면 비슷한 '가든 시티 '를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 하든 서울을 '녹지 그린 시티'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미국 맨해튼이 가치를 유지하는 건 센트럴파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이역할을 해주고 있는데 도심 한가운데에도 이런 포켓 공원(pocket park·소규모 공원)들을 많이 만들어야 됩니다."

- 시야를 미국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미 대선이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후보 전격 사퇴로 요동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 대선 전망을 어떻게 하시는지요?

"트럼프가 당선이 된다면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좀 더 풀릴 것으로 봅니다. 얼마 전 곤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그를 만났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에 남북 관계가 어떻게 바뀔 거냐 물었더니 아마 김정은과 대화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다만 한미 관계가 더 돈독해져야 된다는 조건을 달았어요. 미 정가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 시절에는 뭔가 하려 했다는 평가가 많아요. 다만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무역 관계는 터프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잘못된 협정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자유무역이 더 이상 미국을 강하게 하지 못한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될 겁니다. 미국의 지식인층들은 트럼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00일 정도 남은 시기가 중요하며, 트럼프가 오만해지면 반작용도 상당히 있을 것으로 봅니다."

- 요즘 MZ세대들이 상당히 고민이 많은 세대인 듯 합니다.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라"고 하셨는데요, 청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은?

"자기 스스로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 하루하루가 쌓여 축적돼 결국은 나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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