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준 세금, 나올 곳은 없는데… ‘세수 펑크’ 키우는 정부 [2024 세법 개정안]

이희경 2024. 7. 25.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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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 적자 커지는 경고음
건전재정 천명에도 작년 56조 ‘결손’
세제 개편으로 5년간 18조 감소 전망
“한번 세금 줄이면 되돌리기 어려운데
‘세수 중립’ 방안 없어 과세 기반 흔들”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도 논란 불가피
초고소득자 2400명 1.8조 감세 누려
‘계층 사다리 복원’ 정부 정책도 역행
2024년 세법 개정안에 따른 향후 5년 세수 감소효과가 18조원(누적법 기준)을 넘는 것으로 나타나 세입 기반의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3차례 실시된 세법 개정안의 누적 세수 감소 규모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최소 80조원이 넘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가운데 대규모 감세 조치가 추가돼 중장기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출 여력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상속·증여세의 개편이 정부가 강조하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 복원’ 정책과 배치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세법 개정안으로 2025∼2029년 약 18조4000억원의 세수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준연도(2024년) 대비 증감을 계산한 누적법에 따른 수치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첫해 세제 개편안으로 세수 감소 규모가 60조2000억원에 달했고, 지난해 세법 개정안에 따른 감소효과가 3조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통틀어 약 81조원의 감소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81조원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5년간 세입 약 2000조원과 비교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다만 감세효과는 정부가 추정한 기간(향후 5년)을 넘어서도 발생하는 만큼 2029년까지 누적 규모는 더 확대될 수 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지난해 세법 개정안 발표 당시 2028년까지 89조원에 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해 세법 개정안의 세수 감소는 상속·증여세가 주도했다. 상속·증여세 개편에 따른 감세 규모는 18조6000억원에 달했다. 아울러 소득세와 법인세에서 각각 2조3000억원, 2000억원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부가가치세에서 1조7000억원 정도 세수 증대 효과가 생길 것으로 예측됐다.

대규모 감세정책은 그간 정부가 천명한 건
전재정 기조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석열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중을 3% 내 관리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추진하고 있지만, 출범 후 이 기준을 지키지 못했다. 지난해만 해도 ‘세수 펑크’가 56조4000억원이나 발생한 탓에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3.9%에 달했다. 관리재정수지는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뒤 일시적으로 흑자를 보이는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해 실질적인 나라살림 수준을 보여준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0월 중기재정전망에서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중이 올해 -4.3%, 2025년 -3.5%, 2026년 -3.3%, 2027년 -3.0%로 각각 예측한 바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시적으로 (세 부담을) 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세 기반 붕괴가 제일 큰 문제”라며 “한번 감세를 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이번 정부뿐 아니라 이후에도 재정 여력을 없애는 조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우려가 된다”고 지적했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한 상황에서 특정 계층에 혜택이 집중된 감세조치가 꼭 필요한지 의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인하한 것은 초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세제개편으로 꼽힌다. 기재부에 따르면 최고세율 인하 조치로 혜택을 보는 이들은 약 2400명이며, 이들은 1조8000억원(순액법 기준)의 부담을 덜 것으로 전망된다.
참여연대는 “2023년 상속세 결정세액 12조3000억원의 53.6%(6조6000억원)가 상속재산 규모 500억원을 초과하는 ‘슈퍼 부자’ 37명(0.19%)에게 부과됐는데, 이들에게 적용되는 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 교수는 “보통 세제개편을 할 때는 한쪽에서 줄이면 다른 데에서 늘리는 식으로 세수중립적으로 하는데, 이번 개정안에는 그런 고민이 전혀 없다”며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을 40%로 내리고 할증과세를 폐지하는 부분은 재계의 ‘소원수리’ 성격인데, 이게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보이진 않는다”고 거들었다.

상속·증여세 개편은 나아가 정부가 강조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 복원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이달 초 ‘역동경제 로드맵’에서 성장의 기능을 되살리고, 계층 이동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제안한 바 있다”며 “그런데 상속·증여세의 감세 규모가 크게 되면 결국은 세대 간 소득 및 기회의 격차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낙수효과를 기대하면서 자산소득, 법인세 감세조치를 취했지만 지난해 모든 분기에서 시장소득 기준 5분위 배율 상·하위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등 낙수효과는 잘 작동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계층 이동의 개선을 위해 역동경제 로드맵에서 여러 조치를 제시했지만 세제 측면에서는 반대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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