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끊길까봐…불안감에 일흔 넘어도 일 못 놓는 노인들
- 줄로 묶어 선박 고정하는 ‘줄잡이’
- 부산항 종사자 대다수 60대 이상
- 그중 두둑히 연금 받는 분도 다수
- 부산 ‘70대 이상 취업’ 12만 돌파
- 노인고용률은 OECD 평균의 2배
- 통계청 “왜 일하시나” 물어봤더니
- 절반 이상이 “생활비에 보탬” 꼽아
동이 트기도 전에 70대 장성종(71·사하구 장림동) 씨는 출근 준비를 한다. 자가용을 몰고 어둠을 가로질러 도착한 바다에는 윤슬이 일렁인다. 사람들은 그를 ‘줄잡이’라고 부른다. 배가 오면 지름 5~10㎝짜리 하얀 나일론 줄 6~8개로 연결해 계선주(부두에 세워 놓은 기둥)에 고정하는 작업이다. 동료들도 그와 연배가 비슷하다. 줄잡이가 노인일자리가 된 셈이다.
장 씨는 자신의 직업을 뱀 잡는 ‘땅꾼’이라고 소개했다.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이면 배에 고정된 줄이 당겨졌다 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춤을 춘다. 그럴 때면 그 줄이 마치 흉포하고 거대한 백사(白蛇)가 난동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끊어지거나 팽팽하게 당겨진 ‘백사’에 맞으면 십여 m는 튕겨 나간다. 뼈가 부러지는 치명상을 입는 일도 다반사고, 바닷속으로 빠지기도 한다.
사고는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지난 1월에도 부산항 신항에서 줄잡이 노동자가 숨지는(국제신문 지난 1월 15일 온라인 보도 등) 일이 있었다. 2019~2023년에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정식으로 집계된 어선·비어선 ‘구조물·줄 등의 신체가격’ 사고만 43건. 이중 상당수는 홋줄 사고로 알려졌다.
왜 늦은 나이까지 일을 하느냐고 묻자 “노동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며 “배가 안 들어오는 대기 시간이면 동료들 대부분 일을 그만두면 뭐 하며 시간을 보낼지 이야기한다. 약간 들떠있다. 일이 지겨운 거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일을 안 하고 수입이 없으면 불안하다”며 “우리는 태어난 직후 한국전쟁 전후 시기, 한창 일할 때 외환위기(IMF 사태)를 겪은 세대다. 돈이 쌓이지 않으면 걱정 때문에 버티지를 못한다”고 했다.
부산항 신항 다목적터미널에서 줄잡이로 근무하는 이상곤(69·사상구 학장동) 씨는 내년이면 70대다. 경찰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한 후에 쉬다가 이 일을 시작했다. 연금도 월 300만 원에 달한 정도로 넉넉하지만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이 씨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하면서 노후 자금을 더 마련해 동남아 한 달 살기 등을 해보려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며 노무 관리와 현장 지도 등을 맡는 양병숙(71) 씨 역시 해군특수부대에서 14년, 수협중앙회에서 18년 근무한 후 퇴직한 ‘연금부자’다. 양 씨는 “여기서 일을 하는 이들 상당수가 60대 후반이거나 70대 초반이다. 생계가 곤란해 일을 놓지 못하는 이들은 드물다”며 “보수가 괜찮은 편이고 예전보다는 많이 안전해졌지만, 젊은 사람들이 꺼린다”고 했다.
▮70대 넷 중 하나, 일을 못 놓는다
부산항에 모인 노인들이 별종일까.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부산지역 70대 이상 취업자는 12만5000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2만 명을 넘었다. 70대 이상(주민등록인구 49만 명) 4명 중 1명은 일해서 돈을 버는 셈이다. 지난 3월 11만2000명과 비교하면 불과 3개월 새에 11.60% 폭증했다. 전년도 같은 분기 11만6000명과 비교해도 증가 폭이 8.69%에 달할 정도로 높다. 부산지역 전체 취업자 169만2000명 중 7.38%다.
전국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달 우리나라 70대 이상 인구 642만6000명 중 210만3000명이 취업자로 분류돼 고용률 32.7%를 기록했다. 2019년 6월 이후 5년 만에 63만8000명(43.54%) 급증했다. 지난해 6월 195만9000명과 비교하면 14만3000명이 늘었다. 이 기간 전체 취업자가 2881만2000명에서 2890만7000명으로 9만6000명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70대 이상이 취업자 수 증가를 주도한 셈이다.
이 연령대 노인은 일하고자 하는 욕구도 강하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연령계층별 ‘쉬었음’ 인구는 전년동월대비 20대(3만8000명, 10.6%), 40대(3만2000명, 13.7%), 50대(3만 명, 8.8%) 등에서 고르게 늘어난 반면 60세 이상과 70세 이상은 각각 0.1%, 15.4% 감소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일하는 고령층 비율은 높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국제 비교가 가능한 2021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34.9%로 OECD 평균(15%)의 두 배를 넘는다. 한국 못지않게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25.1%)보다도 높다.
▮노후를 잠식하는 생계 불안
고령층이 일자리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 불안 때문이다. 통계청이 매년 5월 실시하는 경제활동인구 고령층 부가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일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한 55~79세 가운데 절반 이상인 55.8%는 ‘생활비에 보탬’을 선택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건복지포럼 7월호에 실린 ‘노인의 경제적 자원과 사회적 불안 인식’ 보고서는 노인들이 왜 일을 놓지 못하는지를 설명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은 의료서비스, 주거 안정성, 사회적 접근성 등이 낮아져 고립돼 더 큰 불안을 느끼는 악순환에 빠진다. 여기에 더해 연령이 높아질수록 예측 불가능한 의료비용이 증가한다. 그러나 공적연금을 제외한 기초연금 및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 등은 급여 변화 및 급여 중단 가능성으로 불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현재의 공적연금 또한 노인의 기본적 생활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아영 연구위원은 “노인에게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로서 소득뿐만 아니라 재산이 갖는 의미는 크다. 이런 소득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재산은 노년기에 특히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며 “조세정책과 소득지원정책 등을 통해 이러한 자산 격차와 불평등을 줄이는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상= 김채호 김태훈 김진철 박혜원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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