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속 오스칼, 무대에서도 빛나네…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이케다 리요코의 일본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는 "오스칼이 다 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세계적으로 2천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TV·극장판 애니메이션은 물론 실사 영화로도 나온 이 작품의 인기 중심에는 주인공 오스칼이 있었다.
여자로 태어나 남자로 살아야 했던 오스칼이 긴 금발을 휘날리며 칼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청소년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대만,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지에서도 '오스칼 신드롬'이 일었다.
요즘 말로 '강강약약'(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하다)이라는 점도 오스칼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위험에 빠진 약자는 대가 없이 구해주지만, 백성을 괴롭히는 귀족은 자비 없이 체포한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이달 16일부터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동명의 뮤지컬에도 이런 오스칼의 매력이 그대로 담겼다.
왕용범이 연출·작사·극작하고 이성준이 작곡과 음악감독을 맡은 '베르사유의 장미'는 프랑스 혁명기 베르사유 궁전을 지키는 근위대장 오스칼이 귀족의 민낯을 마주하며 겪게 되는 일을 그린다.
작품은 딸만 내리 얻던 자르제 장군이 군인이라는 가업을 잇게 하려고 갓 태어난 막내딸 오스칼을 아들로 둔갑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세월이 흘러 오스칼은 아버지가 정한 운명대로 근위대장에 임명돼 왕실에 충성을 바친다. 그러나 특권 의식이 만연한 귀족 사회와 이들의 수탈로 굶주리는 백성을 보면서 자신이 지켜야 할 국가란 과연 무엇인지 혼란에 빠진다. 솔로 넘버 '베르사유의 장미' 가사에는 그의 이 같은 내적 갈등이 담겨 있다.
오스칼이 여자란 사실을 눈치챈 부하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은 뒤에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까지 더해진다. 자기 인생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이내 타인의 인형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할 것을 다짐한다. 폭발적인 가창력이 돋보이는 넘버 '나 오스칼'을 통해 "백마 탄 왕자는 필요 없다"며 머리 장식을 뜯어내고 드레스를 벗는 장면에서 그의 기백이 느껴진다.
오스칼을 연기한 정유지는 25일 프레스콜에서 "지금까지 맡아온 캐릭터 대부분이 결핍이 있는 인물들이었던 것과 비교해 오스칼은 완벽한 인물처럼 보였다"며 "정해진 대로 살아야 한다는 '선택의 결핍'마저도 자기 힘으로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원작과는 달리 앙드레와의 로맨스가 옅어진 게 특징이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보다는 격변의 시대에 놓인 오스칼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오스칼 역의 옥주현은 "로맨스보다 진정한 진실과 정의 그리고 그것을 찾아가는 사람의 인간애에 중점을 둔 작품"이라며 "관객들은 나는 어떤 인간인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프랑스 혁명을 다룬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도 출연한 옥주현은 "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는지 자주 생각한다"며 "포커스를 다양하게 맞출 수 있는 데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배움을 주는 소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한국 창작 뮤지컬로는 최초로 초연 전 콘서트를 열며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초반부에는 말로 된 대사가 거의 없을 정도로 힘찬 앙상블과 고난도의 솔로 넘버가 휘몰아친다. 특히 오스칼이 앙드레를 위해 부르는 '넌 내게 주기만'은 일명 '5단 고음'으로 보는 사람마저 숨이 가쁘게 만든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베르사유와 귀족들이 벌이는 춤의 향연도 볼거리다. 거대한 조각상과 번쩍이는 장식이 눈길을 잡아끈다.
그러나 스토리의 전개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물들의 심리 변화가 섬세하지 못해 깊이 몰입하기가 어렵다. 일부 캐릭터는 겉도는 느낌도 든다.
공연은 오는 10월 13일까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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