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트라우마”…세월호 생존자 국가배상 소송 ‘각하’
세월호 참사 생존자 윤길옥 씨는 화물차 기사입니다. 화물차 기사로, 배에 탈 때마다 그날의 악몽이 떠오릅니다. 고통이 반복되는 하루하루, 정신을 붙잡기 위해 우울증 약을 먹으며 배에 몸을 싣습니다.
"마지막으로 배 안에서 나오면서 봤던 승무원들, 학생들에 대한 죄책감이 커 '아저씨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악몽을 자주 꾸고 있어요."
-세월호 생존자 윤길옥씨-
윤 씨는 자신이 구하지 못한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고 이야기합니다. 당시 충격으로 지금까지 10년째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윤 씨와 제주지역 세월호 생존자 15명은 지난 2021년 4월,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앞두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제주 세월호 생존자들은 2015년 3월 마련된 '세월호피해지원법'에 따라, 배·보상금을 국가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당시 배·보상금 신청 기간이 '법 시행일로 6개월 이내'로 짧아 배·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배·보상금을 받은 뒤 나타난 병증도 구제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세월호 생존자인 윤 씨가 2015년 배보상 결정 받을 당시 제출한 후유장해 진단서에는 '외상 후 최소 2년 이상이 경과한 후에 판정하는 것이 원칙이나 현 시점은 외상 후 1년 4개월이 지난 시점으로 적절하지 못하다'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재판이 시작된 지 2년째인 지난해엔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정밀 감정하기 위한 신체감정을 진행했습니다. 재판부가 “원고들의 후유장해와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한 별도 감정이 필요하다”는 정부 측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신체 감정절차가 진행되자, 제주를 떠날 수 없었던 세월호 생존자 9명은 소송을 중도 포기했습니다.
지난해 5월, 소송을 계속 진행한 6명의 생존자가 받은 신체 감정 결과에는 '감정일로부터 향후 5년간 추가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가 끝날 시점에 재판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5년의 치료기간 동안 28%의 노동능력이 상실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오늘(25일), 제주 세월호 생존자 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소송이 시작된 지 3년만입니다.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는 제주 세월호 생존자 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재판부는 생존자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어, 2015년과 2016년에 걸쳐 세월호피해자지원법에 따라 이미 보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재판을 청구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재판부는 "생존자들이 동의해 배상금을 받았기에, 더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며 "생존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예상 불가능한 후유장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도 밝혔습니다.
또, 생존자들이 세월호피해지원법과 관련해 낸 위헌법률 심판제청 신청도 "피해자에게 과거 모든 항목에 대해 보상했고 충분한 숙려기간도 부여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생존자들을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는 "생존자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예상 가능한 후유장해였지만 지속기간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의사들도 인정하는 것처럼 배상금 책정을 위한 후유장해 진단서가 불완전한데, 이러한 진단서를 갖고 배·보상을 해놓고 더 이상 국가의 책임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정부의 행태에 면죄부를 준 불량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도 2021년 발간한 ‘세월호 참사 배·보상 기준과 추진 과정의 적정성 조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세월호 참사 배·보상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점 등을 고려해 직권 재심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참위는 보고서에서 "세월호참사의 생존자들에 대해 제대로 정신장애 진단을 내리기도 전에 사고의 원인 조사나 관련 재판이 종결되지 않아 '정부 책임'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보상 신청 기한을 종료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신청 기간을 지나치게 한정하여 추진하는 것은 행정 편의일 뿐"이라며 "향후 재난 피해지원 관련 법령 제정 시 신청은 충분한 기간 동안, 신청 후 지급 결정은 조속히 진행되도록 법령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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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주 기자 (think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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