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만에 전한 인사 "편히 잠드소서"…여순사건 희생자 첫 봉안식
담양 야산서 유해 26구 발굴…구례지역 희생자 추정
유족들 헌화하며 "편히 주무시라" 담담히 인사
하지만, 초라한 행사 및 진상규명 위한 과제 지적도
"늦었지만…이제야 모시게 됐습니다. 편안히 잠드십시오."
76년 만에 마주한 여순사건 희생자 유골함 앞에선 유족 이근선(88)씨는 국화꽃 한 송이를 올리며 담담히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였다. 이 씨는 초등학생 때 이번 유해발굴이 진행된 전남 담양군 옥천야수터 매장지에서 아버지를 여읜 유족이다.
여순사건 희생자 유해발굴 사업 봉안식 및 최종보고회가 25일 오전 전남 구례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날 봉안식에는 김순호 구례군수, 이규종 중앙위원 겸 구례 유족회장, 장길선 구례군의회 의장, 김차진 여순사건지원단장, 여수·순천·구례 유족 등 130여 명이 참석했다. 봉안식은 경과보고와 추도사, 최종 보고, 유족 대표 인사말,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유족 이 씨는 인삿말에서 "아버지가 초등학생 때 돌아가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정성을 다해 시신을 수습하고 좋은 장면을 기억하시도록 모시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데, 아버지의 유골도 압수하지 못한 채 불효자로 살면서 참담한 심정으로 세월을 보냈다"고 전했다.
"여기 희생자들은 죄인이 아니다"라며 "두 번에 걸쳐 피해자 신고기간을 설정해 진실규명을 했지만 이렇다 할 결과는 없다. 상설기구를 설치해 언제 어디서나 신고하고 직권으로 철저하게 진실을 규명해야 하며, 가해자에게는 책임을 묻고, 억울함으로 인생을 산 유족에 대한 배보상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삐뚤어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며,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여순위) 주관으로 시작된 유해발굴 사업은 2022년 1월 여순사건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정부 차원에서 처음 진행됐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진압 출동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킨 사건이다.
여순위 주도로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 옥천골 야산에서 발굴된 유해는 총 26구. 담양 대덕면 문학리 산 66번지 1지점에서 18개체, 2지점에서 8개체가 드러났다. 1지점의 경우 10대의 청소년 유해도 1개체도 드러났다. 얼굴이 바닥을 향한 채 고꾸라진 유골, 경찰관이 사용했다는 탄피도 발견됐다.
발굴된 희생자 유해는 봉안식 이후 운구해 세종 추모의 집에 임시로 안치됐다. 이후 발굴된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 확인 절차가 진행된다.
이번 유해 발굴 사업은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시행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다만 유해 발굴이 일부 지역에 그친 점과 봉안식도 축소된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여순위는 당초 봉안식 참석자를 50여 명으로 제한해 소규모로 개최하려고 했으나, 유족 측의 요청으로 인원을 늘려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장수 여수유족 회장은 "지금이라도 국가가 유해발굴에 나선 점은 다행이지만 여순사건의 핵심 지역인 여수와 순천에 대한 유해발굴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며 "여수 만성리 형제묘 같은 경우 125구가 묻혀 있는데도 왜 제외됐는지, 진실을 은폐, 축소시키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다른 유족도 "유해발굴 결과보고와 봉안식은 여순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중요하고 의미있는 성과"라면서도 "동부권 유족들을 초청해 방안식을 개최하지 않고 소규모 행사로 치르려고 한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날 유족들은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서 여순사건위의 조사기간 연장과 왜곡 논란이 인 진상조사 보고서 작성 기획단의 재구성 등을 촉구하기도 했다.
여순사건위의 조사 기간은 진상규명 개시 결정을 한 2022년 10월 6일부터 2년 뒤인 올해 10월 5일까지다. 조사 종료일까지 남은 기간은 70여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접수된 진상규명 건수는 191건, 희생자 신고는 7465건이기 때문이다.
최경필 여순10·19범국민연대 사무처장은 "남은 기간 접수된 진상규명 사건을 조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진상보고서 기획단에 소속된 위원들은 편향성 논란을 가진 이들이다. 전문성과 객관성을 갖춘 인물들로 기획단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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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CBS 박사라 기자 sarai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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