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4박5일 방송4법 필리버스터 돌입···역대 두 번째로 길 듯
국민의힘이 25일 ‘방송 4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해 최대 4박5일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둘러싼 여야 충돌이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 주도의 토론 종결과 법안 처리,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는 정해진 수순이다. 22대 국회 두 달 만에 두 번째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면서 여야 합의 실종에 따른 극한 대립이 일상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 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바로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본회의에 올라온 방송 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통위법) 중 방통위법 개정안이 가장 먼저 상정되면서 첫 필리버스터 대상이 됐다.
첫 주자로는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나섰다. 최 의원은 “1개월 동안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활동을 해보니 이 상임위의 99%는 방송지배 구조에 매달려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민주당이 방통위 2인 체제를 문제삼는데) 민주당이 추천해야 될 방송통신위원 두 사람, 여당 추천 몫 한 사람을 빨리 국회에서 의결해 5인 체제를 원상복귀하자”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방송4법에 대해 20명 안팎의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예정이다.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찬성 토론에 나선다. 국회법에 따라 24시간 뒤에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동의로 필리버스터를 종결할 수 있다. 오는 29일까지 최소 96시간, 4박5일 동안 필리버스터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가 192시간25분, 2020년 공수처법 개정안 등 3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89시간5분 동안 진행돼 역대 두 번째 최장시간 필리버스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 4법은 공영방송인 KBS·MBC·EBS의 이사 숫자를 늘리고 언론단체와 시민단체 등 외부에 이사 추천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3법과 방통위 의결 정족수를 현행 상임위원 총 5인 중 2인에서 4인으로 늘리는 방통위법 개정안을 묶어 말한다. 해당 법에 대해 민주당은 언론 정상화4법, 국민의힘은 방송장악4법이라고 부르며 각각 찬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방송4법에 대해 필리버스터로 대응하겠다며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을 향해 본회의 사회를 거부해줄 것을 요청했다. 주 부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마구잡이로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방식의 국회 운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본회의 사회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공영방송은 국민 모두의 것이다. ‘땡윤’뉴스와 ‘윤비어천가’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권력의 애완견으로 변질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며 “국민께 소중한 공영방송을 돌려드리고 언론 독립을 지키는 방송4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지난 4일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가 종료된 지 21일 만이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은 야당 단독 처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는 등 여론전에 효과적인 수단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이 매번 강행처리하는 데 대한 부담이 있을 것”이라며 “실효성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잦은 필리버스터에 국민의힘 내에서도 피로감과 실효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국민의힘 영남권 중진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어차피 24시간마다 종결 표결을 하면 민주당은 매일 승리의 날이 될 텐데 우리는 매일 열심히 해도 법안이 통과될 테니 패배의 날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합의 부재로 ‘야당 단독 상정 → 필리버스터 → 의결 → 거부권(재의요구권) → 재표결’만 반복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채 상병 특검법까지 벌써 15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에서 “필리버스터도 하긴 하는데 24시간 뒤면 종결돼 (법안이) 통과되고, 대통령께서 재의요구권을 또 쓰실 것”이라며 “그럼 국회로 또 오고 어차피 재의결 부결이 된다. 눈에 보이는 프로세스인데 여야가 공전하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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