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배임죄를 바라보는 무거운 시선

2024. 7. 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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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죄 폐지론' 논란이 뜨겁습니다.

'법 규정 자체가 모호하고 처벌 범위가 너무 넓다' '기업 의사 결정에 대해 과도하게 처벌한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우리나라는 광복 후 형법에 단순 배임죄와 업무상 배임죄를 두고, 상법에 특별배임죄를 규정합니다.

심사숙고 끝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행위가 나중에 법의 잣대로 처벌된다면, 배임죄 때문에 의사 결정을 회피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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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범위 넓고 규정 모호
'배임죄 폐지론' 급부상
기업의 도전·혁신 꺾지 않게
명확한 법률 해석과 판례로
죄의 성립·면책 기준 세워야

'배임죄 폐지론' 논란이 뜨겁습니다. '법 규정 자체가 모호하고 처벌 범위가 너무 넓다' '기업 의사 결정에 대해 과도하게 처벌한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일본·독일에도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만 처벌이 많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배임죄는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신뢰를 배신하고 자기 또는 누군가에게 이득을 취하게 하는 범죄입니다. 회사 이사가 회삿돈을 허투루 사용하는 경우, 회사 자산을 싼값에 매각하는 경우, 회사의 사업 기회를 가로채는 경우를 비롯해 행태가 다양합니다.

배임죄는 자본주의 발달로 사유재산 보호가 강화되면서 중시되기 시작합니다. 1810년 프랑스 형법의 '신뢰침해죄'를 시작으로 독일과 일본도 형법에 '배임죄'를 신설합니다. 영국이나 미국은 배임죄를 두지 않는 대신 절도나 사기죄 규정을 활용해 처벌합니다.

경제 악화로 경제범죄가 증가하면 법도 강화됩니다. 1930년대 대공황 여파가 심각해지자 프랑스와 일본은 상법에 '회사재산남용죄'나 '특별배임죄'를 도입합니다.

우리나라는 광복 후 형법에 단순 배임죄와 업무상 배임죄를 두고, 상법에 특별배임죄를 규정합니다. 단순 배임죄는 징역 5년 상한인데, 업무상 배임죄와 특별배임죄는 10년입니다. 1980년대 들어 대형 경제범죄가 속출하자 가중처벌특별법을 만듭니다. 50억원 이상 배임죄는 사형, 무기징역까지 가능하게 합니다. 이후 사형은 삭제됩니다.

신뢰 훼손 행위가 다양하기에 배임죄의 성립 요건은 포괄적입니다. 어디까지 처벌되는지 분명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검찰은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는데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판례를 집대성한 형법 주석서에도 배임죄 부분이 가장 방대합니다. 우리나라에선 대기업 지배주주의 경영권 보장과 승계를 둘러싼 사건이 이슈화되곤 합니다.

형벌 법규는 명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심사숙고 끝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행위가 나중에 법의 잣대로 처벌된다면, 배임죄 때문에 의사 결정을 회피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도전과 혁신 의지를 꺾을 수 있습니다. 배임죄 폐지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배임죄를 아예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주요 국가들도 배임죄를 존치합니다. 자본주의가 유지되려면 구성원들의 신뢰, 트러스트(Trust)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주식회사는 대주주, 소액주주, 채권자, 직원, 납품 회사, 소비자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가 얽혀 있어 회사 재산 훼손 행위에 대해선 엄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대기업 오너 관련 형사 사건들이 크게 보도되지만, 중소기업에서 주주 몰래 회사 자산을 빼먹는 사례도 많습니다. 너무 세밀하게 규정하면 피해 갈 구멍이 생깁니다.

법조문 자체는 포괄적이라도 해석 기준은 명확히 해야 합니다. 독일은 판례를 통해 처벌 범위를 제한하다가 2005년 법률로 '경영 판단의 원칙'이라는 면책 기준을 도입합니다. 2010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부정한 돈을 받은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한정하는 판결을 선고합니다. 프랑스에서도 2000년대 들어 '과도한 처벌이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배임죄는 그대로 두지만 경제 관련 다수 형벌 규정을 비범죄화합니다.

우리도 법률과 판례를 통해 배임죄의 성립과 면책 기준을 분명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회에서 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대로 논의하고 독립적인 준법감시 시스템의 검증을 거쳤다면 정당한 경영활동으로 인정돼야 합니다. 수사 단계에서 반대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체 레드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변화의 시대를 맞아 우리 기업인들이 과도한 처벌 위험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도전하고 혁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심(私心)이 없으면 천지가 넓어야 합니다.

[봉욱 전 대검 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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