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젠슨 황은 왜 한여름에도 가죽재킷만 입나
'AI 황제의 갑옷' 대해부
가죽재킷, 인류 기술진보와 연관
2차 세계대전 '폭격기 재킷' 출발
비행기 조종사의 필수 복장으로
20세기 남성미 강조 패션의 전형
많은 할리우드 영화 주인공 입어
비행 전·후 세상이 달라진 것처럼
AI도 인류 바꾸는 새 기술로 각광
젠슨 황이 가죽재킷 입는 건 '필연'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 공식 석상에 등장하는 젠슨 황에겐 시그니처 룩이 있다. 검정 가죽재킷이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까진 이해가 되지만 한여름 무더위에도 절대 벗지 않는 ‘인공지능(AI) 황제의 갑옷’엔 무슨 사연이 있을까.
비행기의 탄생과 가죽재킷의 상관관계
동물 가죽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옷, 옷의 재료였다. 인류 문명이 직조라는 공예적 행위를 하기 전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질기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젠슨 황이 즐겨 입는 가죽재킷은? 놀랍게도 가죽재킷은 인류가 일궈낸 놀라운 기술적 진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로 비행기다.
초창기 비행기는 충분한 부력을 얻기 위해 가능한 한 가벼워야 했다. 비행기에 온열기는커녕 창문과 뚜껑조차 사치이던 시절, 높은 고도의 추위와 바람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비행기 조종사들에겐 보온복으로 가죽옷이 필수였다. 1900년대 초 안쪽에 두툼한 털이 달린 황갈색 양가죽재킷은 비행기 조종사들의 필수 복장이었다.
획기적으로 비행기술이 발전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Type A1’이라 불리는, 목과 허리를 니트로 감싼 단추 여밈 재킷이 탄생했다. 이 재킷은 폭격기 재킷이라는 뜻의 ‘봄버재킷’이라고도 불렸다. 곧 ‘Type A2’라는 개량형 항공재킷도 나왔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까지 미 육군 항공단의 표준 보급품이었다. 곧 합성섬유 기술과 항공기의 보온 기능 강화로 ‘폭격기 재킷’은 가죽에서 합성섬유로 대체된다.
어쩌면 가죽재킷의 운명은 여기까지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A2 가죽재킷의 인기는 대단했다. 군수 보급이 공식 중단되자 수많은 민간 제조자들이 비슷한 형태의 제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6·25전쟁에서도 이미 공식 유니폼에선 제외된 이 가죽재킷을 조종사들은 즐겨 입었다(인천상륙작전으로 유명한 맥아더 장군도 포함이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가져온 조종사들과 함께 ‘A2=승리의 상징’이라는 이미지가 퍼지며 줄곧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비행 전과 후의 세상이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달라졌다. AI가 새로운 세상을 여는 획기적인 기술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젠슨 황이 가죽재킷을 선택한 건 우연보다는 필연에 가깝다.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안 더워요?” “나는 쿨합니다”
가죽재킷은 20세기 후반 남성미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옷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특히 그랬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주인공 게리 쿠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속 해리슨 포드를 떠올려보자. 가죽재킷이 만들어낸 용기와 탐험의 이미지는 꽤 오래 우리 뇌에 각인돼 왔다. 그중에서도 ‘차가운 도시 남자’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건 블랙. 황갈색의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보단 올 블랙의 가죽재킷이 더 강인하고 강렬하다.
지난 6월 초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에서 한 젠슨 황의 말을 기억하시는지. 블랙 가죽재킷을 입은 그에게 한 기자가 “안 더워요?”라고 묻자 그는 답한다. “아뇨, 전 언제나 쿨합니다(I’m always cool).” 그러니까 그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전형적인 블랙 가죽재킷의 오랜 이미지일 테다.
블랙 가죽재킷의 의미 있는 첫 등장은 어빙 쇼트라는 러시아 이민자 출신 의류업자의 ‘퍼펙토(Perfecto®)’다. 이는 어빙 쇼트가 좋아하던 니카라과산 시가의 이름으로, ‘완벽하다’는 뜻의 스페인어에서 가져왔다. 원어로 읽으면 발음은 [뻬르빽또]가 맞다. 모터사이클 라이더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좀 더 멋진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1928년 처음 탄생한 이 재킷은 말런 브랜도가 주연을 맡은 영화 ‘위험한 질주’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제임스 딘을 스타로 만들어 준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는 권위에 저항하며 폭주하는 젊은이들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소위 ‘브랜도 룩’이라 불리던 복장이 한때 미국 학생들에겐 금지 복장이 되기도 했으니, 그 영향력과 인기를 가늠할 만하다.
반항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블랙 가죽재킷만 한 아이템이 또 있을까.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인 앤디 워홀도, ‘전격 Z작전’의 데이비드 하셀호프도, ‘터미네이터’에서 T-800 역할을 맡은 아널드 슈워제네거도 이 재킷 하나로 이미지를 굳혔다. ‘매트릭스’와 ‘블레이드’의 악역들 역시 블랙 가죽재킷과 코트로 선과 악이 모호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스티브 잡스와 다른 젠슨 황의 패션 전략
젠슨 황은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미래 기술에 꼭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를 공급하는 회사의 수장으로서 분명 강력한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블랙 가죽재킷은 얼마나 쉽고 탁월한, 그야말로 ‘뻬르빽또’한 선택이란 말인가. 낯선 나라에 이민 온 아시안 소년은 아무리 수학에 능한 모범생일지라도 미국 주류 사회에서 치이고 밟히기를 반복했으리라.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젠슨 황의 스타일링은 이전까지 단일한 스타일링을 고집하던 실리콘밸리의 거물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와는 전략적 차원에서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다른 일에 집중하기 위해 옷의 선택을 단순하게 했다’는, 패션과 스타일을 모독하는 진부한 답변을 넘어선다. 역사와 미디어 속 캐릭터들이 선택한 강력한 방법론을 택하되, 매번 조금씩 다른 디자인으로 그만의 스타일 변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기술로 세상의 변화를 리드하면서 그만의 색을 드러내기로 한 그의 선택은 박수받을 만하다. 옷 따위를 선택하느라 자기 두뇌 용량을 조금 더 써도 부족할 리 없는 그런 사람, 고용량의 그래픽처리장치로 세상을 매번 놀라게 하는 엔비디아의 창업자다운 선택이기도 하다. 다음 공식 석상에서 그가 선택할 검정 가죽재킷의 디자인이 무척 궁금해진다. 그날의 엔비디아 주가도 함께.
한국신사 이헌(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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