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안한다면서 거래세도 원상복구 안해···세수 펑크 우려 가속
증권거래세는 단계적 인하, 세입 기반 취약
전문가 “감세 정책, 투자 증대 효과 불확실”
정부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2년 미루기로 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는 폐지하지만,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폐지 수순을 밟아온 증권거래세는 예정대로 낮추기로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대규모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데도 정부가 세입 기반을 확충하려는 노력 없이 감세 카드만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정부가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을 보면 가상자산 과세는 2027년으로 연기된다. 정부는 이용자 보호와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한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시행과 2027년부터 이뤄지는 국가 간 가상자산 거래 정보 교환을 고려해 과세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주식 등에 부과하는 금투세를 폐지하겠다고 한 상황에서 가상자산만 예정대로 과세하면 형평성 논란에 직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금투세 폐지 방침도 확정했다. 기획재정부는 “국내 투자자 보호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금투세를 폐지하고, 현행 주식 등 양도소득세 체계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대신 증권거래세는 계획대로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지난해 0.23%에서 0.20%로 인하한 증권거래세는 올해 0.18%, 내년에는 0.15%까지 떨어진다.
2020년 여야는 2023년에 금투세를 도입하되, 증권거래세는 단계적으로 인하·폐지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시행 시기가 2025년으로 밀린 금투세는 결국 시행도 전에 폐지 수순으로 접어들게 됐지만, 이와 패키지로 다뤄졌던 증권거래세는 원상 복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증권거래세율 인하로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10조1491억원의 세입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금투세가 2025년부터 시행되면 2027년까지 3년간 세수가 4조328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잘 걷히던 거래세는 줄어들고, 새로 걷기로 한 금투세는 폐지되면서 나라 살림은 더 쪼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가상자산 과세마저 연기하면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원칙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미 부과하고 있는 세금의 세율도 낮추고, 공제액도 늘린다. 정부는 이번 세법 개정을 통해 상속·증여세율을 낮추고, 상속세 자녀 세액공제 등을 확대하면서 향후 5년간 세 부담이 18조4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최대 주주 할증평가 폐지와 가업상속 공제 등을 고려하면 세수 감소 폭은 이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세수 여건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인 56조원대의 ‘세수 펑크’가 발생한 데 이어 올해에도 5월까지 국세가 전년보다 9조1000억원 덜 걷히는 등 세수 여건이 좋지 않다. 경기 침체로 법인세가 큰 폭으로 줄어든 데다 정부가 감세 정책을 고수하면서 2년 연속 ‘세수 펑크’가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고물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내수 부양과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재정 여력을 확보해야 하는데도 정부가 감세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감세 정책은 투자 증대효과는 불확실하지만, 세수 감소는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며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정부가 세금이 잘 안 걷히는 상황에서 세율 인하를 왜 추진하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는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세법을 개정했다면서 내년에는 경기가 회복해 세수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세법 개정안은 세수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하고, 내년에는 전반적으로 기업 실적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올해보다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며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경제 활력 제고와 민생 안정을 위해 개선한 효과도 같이 봐야 한다”고 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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