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이 두산에 지적한 건 ‘위험 고지 미흡’... 개미 원하는 합병비율 수정은 없다
두산그룹은 7거래일 만에 수정 지시 받아
투자 위험 사항 자세히 기재하는 수준에 그칠 듯
금융감독원의 제동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잠시 멈췄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원하는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합병·교환 비율 수정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사 간 합병이지만 할증이나 할인을 하는 식으로 합병 비율을 조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합병 비율 수정 의사가 없고, 금감원 또한 합병 비율 수정을 요구한 상황이 아니다. 두산은 지배구조 개편에 따른 투자 위험 사항을 좀 더 자세히 기재하는 수준에서 정정을 마칠 것으로 보인다.
2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두산로보틱스가 합병과 교환에 대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지 7거래일 만에 정정하라고 지시했다. 두산처럼 타 법인과 합병하거나 주식을 교환할 때는 금융당국에 증권신고서를 내야 하는데, 이를 당국으로부터 수리받아야만 계획대로 합병·교환을 진행할 수 있다. 전날 금감원이 로보틱스가 제출한 증권신고서의 효력을 정지했는데, 두산이 3개월 이내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합병·교환은 없는 일이 된다.
금감원은 합병·교환 비율이 불공정하게 책정됐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부분을 특정해 회사에 수정하라고 지도한다. 사례가 있다. 앞선 2021년 A사와 B사는 합병을 하면서 기준주가를 바탕으로 합병 비율을 계산했다. 기준주가란 1개월과 1주일 가술산술평균 주가와 최근일 종가를 3으로 나눈 수치로, 두 회사 모두 상장사라 주가가 있어 기준주가를 썼다.
회사는 기준주가에서 30% 범위 내(계열사 간은 10%)에서 할인 또는 할증을 통해 최종 합병가액을 정한다. 두 회사는 이 거래에서 A사는 할인을, B사는 할증을 했다. 그리고 금감원은 이 이유를 물었다. 가령 A의 합병가액을 기준주가에서 30%를 할인했다면 금감원은 왜 A사는 할인이며 그 비율은 왜 30%인지에 대한 추가 설명을 요구한 것이다. 사실상 합병 비율을 다시 산정하라는 압박이었다.
그러나 금감원의 이번 지적은 이 사례와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로보틱스의 증권신고서 제출 일과 금감원의 정정 요구까지 시차가 있는 만큼 합병·교환 비율은 수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금감원이 회사에 합병·교환을 고치라고 할 땐 증권신고서가 제출된 즉시 정정신고를 지시해서다. 이번에 정정신고서를 요구한 사유 역시 거래의 중요한 사항이 자세히 기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금감원 설명이다. 투자자가 기존 증권신고서로는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내리기에 정보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지, 합병·교환 비율이 개인 투자자에게 불합리해서가 아니란 뜻이다.
두산의 구조개편은 크게 3단계다. ▲먼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투자사업부문을 떼어낸다. 이때 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밥캣은 투자사업부문에 붙인다. ▲이후 투자사업부문을 두산의 또 다른 자회사인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 ▲마지막으로 투자사업부문은 소멸하고 밥캣은 로보틱스의 자회사가 된다. 로보틱스는 밥캣 주주에게 밥캣 주식을 받고 대신 자사의 주식을 준다. 로보틱스의 100% 자회사가 된 밥캣은 상장폐지된다.
이에 에너빌리티와 밥캣 주주들은 합병·교환 비율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 과정에 따르면 에너빌리티 주주는 밥캣을 넘겨준 대가로 에너빌리티 1주당 로보틱스 주식 0.03주를 받는다. 상폐되는 밥캣의 주주는 1주당 로보틱스 주식 0.63주를 받는다. 건실하게 이익을 내는 회사인 밥캣을 넘기는 것도 서러운데, 그 대가로 적자 기업의 주식을 극히 적게 받으니 주주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두산은 A·B사와 달리 할인과 할증을 모두 적용하지 않았다. 기준주가를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정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금감원이 여기에 개입할 여지는 극히 적다. 그나마 언급할 수 있는 건 투자사업부문과 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이다. 다른 과정은 상장사끼리의 거래라 주가를 이용해 ‘태클’할 수 있는 여지가 적지만, 투자사업부문은 비상장사라서다. 비상장사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대 1.5로 가중평균해 합병가액을 정한다. 수익가치는 회사가 미래에 얼마를 벌 수 있는지 추정한 것으로, 예측의 영역이다.
투자사업부문은 특정한 사업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밥캣만 갖고 있는 껍데기라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는 모두 밥캣 주가에 연동돼 있다. 회사들이 비상장사의 가치를 부풀릴 때 과도한 장밋빛 전망으로 수익가치를 부풀리는데, 두산은 이 케이스는 아닌 것이다. 이 탓에 금감원이 합병·교환 비율을 지적하기는 더욱 어렵다.
개인투자자들은 동원산업 사례를 이야기한다. 2022년 상장사인 동원산업은 비상장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와 합병을 발표했는데, 동원산업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반 주주들이 두 달 가까이 시위 등을 하며 반발하자 동원산업은 합병 비율을 수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상장사와 비상장사간 합병이라 가능했다. 두산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금감원의 ‘의중’이다. 금감원이 겉으로는 합병비율을 문제삼지는 않는다고 하면서도, 계속 증권신고서를 반려하는 식으로 압박할 수도 있다. 신규 상장 기업의 공모가가 비쌀 때 간혹 있는 일이다. 자본시장법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금감원은 비율보단 위험 공시 부분을 지적해 간접적으로 두산을 압박할 것”이라며 “두산이 리스크를 고지하다가 당국으로부터 계속 정정 요구를 받으면 구조개편 계획을 철회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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