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오픈 관전기-골프는 안티게임인가? [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

연제호 기자 2024. 7. 2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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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인 로리가 제151회 디오픈 3라운드 8번 벙커에서 샷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ㅣ R&A

모든 현대 스포츠를 통틀어 골프는 가장 오래된 게임이고, 디오픈은 가장 오래된 대회다. 최초의 골프는 링크스골프였는데, 링크스 골프에서 행운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코스보다 크다. 잘 친 샷도 울통불퉁한 모래 둔덕의 어느 면을 맞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페어웨이와 그린이 딱딱하기 때문에 거리 조절도 어렵다. 핀을 향해 굴러가는 공이 그린의 심한 굴곡을 타고 벙커로 들어가는 일도 빈번하다. 바람이 모래를 날려 버리지 못하도록 벙커를 깊게 파기 때문에 공이 벙커 앞이나 뒤 부분에 위치하면 정상적인 핀 공략이 어렵다.

스코틀랜드 사우스 에어셔의 로열 트룬에서 열린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 제152회 디오픈 셋째 날(3라운드)에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링크스 코스에서 약간의 비는 오히려 좋다. 페어웨이와 그린을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에 불규칙 바운스가 줄어든다. 그러나 비는 예상보다 많이 오래 내렸다. 일찍 플레이를 마친 선수는 좋은 성적을 냈다. 임성재는 이날에 5언더파를 쳤다. 김시우는 238야드 17번홀에서 홀인원을 기록했다.

오후 2시30분부터 바람 방향이 바뀌었고 강해졌다. 비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기에 플레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로열 트룬은 진정한 링크스 코스답게 물이 고이는 곳이 생기지 않았지만, 비로 인해 런이 발생하지 않았고, 드라이버 샷조차 떨어진 지점에 멈췄다. 공에는 물이 묻어 임팩트가 깔끔하지 않았으며, 날아가는 공도 저항을 받았다. 선두를 달리던 셰인 로리(아일랜드)의 티샷 비거리는 전달 대비 90야드가 덜 나갔다. 오전에 플레이한 선수는 17번 홀에서 아이언을 잡았지만, 마지막조에서 플레이한 셰인 로리와 다니엘 브라운(잉글랜드)은 드라이버를 잡고도 짧았다.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마른 수건으로 클럽 손잡이를 닦았지만, 어드레스 자세에서 맞는 비로 다시 손이 젖었다. 평상시와 같은 셋업을 가져 갈 수 없었다. 간신히 버티던 선수들이 경기 막판에 보기와 더블보기를 쏟아냈다. 오후에 출발한 상위권 선수들은 손해를 봤다. 디오픈은 불공정한 게임이 되어 버렸다.

스코티 셰플러(미국)와 더스틴 존슨(미국), 셰인 로리와 다니엘 브라운은 경기 후에 골프 인생에서 가장 힘든 후반 홀을 쳤다고 말했다. 선두를 달리다가 주저앉은 로리와 브라운은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셰인 로리는 로열 포트러시에서 개최된 제148회 디오픈(2019년) 챔피언이었다. 이후로그는 PGA 투어 대회에서 한번도 선두에서 경기해 본 적이 없었다. 다니엘 브라운은 무명에 가까운 선수로 경기에 나갈 경비가 없어서 어머니가 지인에게 빌려 온 돈으로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였다. 디오픈 예선전 마지막 홀에서 20피트 롱퍼팅을 집어 넣고 가까스로 디오픈에 출전할 수 있었던 그의 꿈은 잔인하게 좌절되었다.

링크스 골프는 마른 날씨에는 불규칙 바운스로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어거스타 내셔널이었다면 다른 탑 랭커들의 활약으로 로리와브라운이 셋째 날 후반까지 선두를 지키는 일은 없었을 수 있다. 그들의 선전은 링크스 코스가 가져다준 행운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변덕스러웠다. 셋째 날오후에 비가 오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있어났을까?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처럼 번개로 인해 경기가 순연되고 3라운드 후반부가 다음 날로 연기되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번개는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번개로 경기가 순연되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

행운이 중요한 링크스 코스에 변덕스런 날씨가 불공정을 더한다. 게임의 생명이 공정함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링크스 코스에서 열리는 디오픈은 안티게임에 가깝다. 디오픈은 최고 중 최고를 뽑는 게임이 아니라, 누가 불운을 극복하는가, 누가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선택을 받는가에 관한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링크스 골프는 우리 삶에서 행운이 차지하는 부분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말해준다.

잰더 쇼플리가 디 오픈에서 우승한 뒤 클라레 저그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우스 에어셔(스코틀랜드) | AP뉴시스
올해 디오픈 챔피언은 젠더 쇼플리(미국)였다. 그는 마지막날 보기 없이 6언더파를 쳤다. 그의 우승에 행운이 관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최고 중 최고가 아니라고 주장할 골프팬은 없다. 해마다 우리는디오픈 챔피언을 보면서 그들에게 챔피언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삶에서 행운이 차지하는부분을 과대평가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불운으로 최고의 위치에 도달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행운으로 최고에 오른 사람이 최고가 아니었던 적도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놀드 파머가했다고 믿어지는 말을 떠올리며, 젠더 쇼플리의 우승을 축하하는 것이다.‘우리가 연습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행운에 더 가까워진다.’

스코틀랜드 ㅣ 윤영호 골프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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