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따라한 일률적 규제, 디지털 산업 초격차 `발목`
국내 플랫폼 역차별 유발 우려
입법지원보다 빅테크 규제 혁신
유럽연합(EU)과 일본, 영국 등 세계 선진국들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국내에서도 '빅테크 규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 기업에 잠식당한 유럽·일본 시장과 달리 온라인 검색, 메신저, e커머스 등 주요 디지털플랫폼 시장에서 유일하게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하는 자국 플랫폼이 있는 한국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일률적인 규제는 오히려 우리나라 플랫폼의 역차별을 유발해 결과적으로 글로벌 빅테크에 유리한 시장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종민 새로운미래 의원,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 공동 주최로 열린 '디지털경제3.0포럼' 창립식 및 세미나 기조발제에 나서 "외부효과를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친다"면서 "국내에는 규제영향평가 제도가 없고, 명분에만 집착한 나머지 증거 기반 실용적 법제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대표적인 명분 없는 규제로 △스타트업 혁신을 막은 '타다금지법' △국민 불편만 가중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국민통신비 부담 증가시킨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국내 게임산업 발전 막은 '게임 셧다운제' △국내 동영상 서비스 추락시킨 '인터넷 실명제' 등을 들었다.
최근 세계적으로 빅테크 대상 규제를 본격 시행하면서 국내에서도 플랫폼 규제가 추진되는 점에도 주목했다. 대표적인 빅테크 규제로 꼽히는 것은 EU의 '디지털시장법'(DMA)이다. EU는 올해 3월 7일부터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과 공정경쟁을 강조하며 알파벳, 아마존, 애플, 바이트댄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6개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했다. 특정서비스를 운용하며 획득한 데이터 결합·이전 광고 활용 금지, 경쟁업체 서비스보다 서비스 상위 노출금지, 이용자 동의없는 개인정보 활용금지 등 사실상 미국·중국 기업을 겨냥한 규제다. 일본도 2020년 6월 '특정 디지털 플랫폼법'을 제정해 구글과 애플 등 특정기업을 사전지정하고 공시규제, 조치규제, 감독규제 등을 시행하고 있다.
박 회장은 국내에서도 플랫폼 사업자 규제 움직임이 있는 것과 관련해 "국내 플랫폼 시장 상황은 주요 플랫폼 규제 국가와는 다르다"며 "국내는 현행 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력을 가진 플랫폼 사업자의 남용행위를 규율할 수 있다.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추진하는 이유는 입법만능주의"라고 일침했다.
박 회장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치열하게 생존 전략을 추구해야 할 기업들이 규제 대응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며 "국내에서는 하나의 플랫폼 기업이 시장을 다 잡아먹는 포식자가 될 것을 우려하지만, 플랫폼은 제조업자, 소상공인, 소비자 등 모든 경제 주체가 관여해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만큼, 몇개 기업만 겨냥해 규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정부·국회 차원에서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자율규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플랫폼 자율규제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라며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기술 고도화를 기반으로 변화의 속도가 빠른 디지털 영역에서는 민간 주도의 다양하고 유연한 규제가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디지털경제 기반 스타트업 육성방안' 발제를 맡은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부의장은 디지털경제3.0 관련 산업이 직면한 규제장벽을 혁신대상으로 지목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저작권법 등이 대표적이다. 구 부의장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규제 시스템이 없다. 미래사회 변화를 예측하고 규제변화를 미리 연구하는 규제개혁 R&D가 부재하다"면서 "결과적으로 혁신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의 수용불가 및 금지규제가 양산되고 있다"고 짚었다.
구 부의장은 규제혁신이 필요한 스타트업 분야로 △인공지능(AI) 및 기계학습 △블록체인 및 암호자산 기술 △빅테이터 및 데이터 분석 △메타버스 및 확장현실 등을 제시했다. 구 부의장은 "정부 R&D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의 1%만 규제개선에 할당해달라는 건의를 여러 차례 해왔다"면서 "규제 법안을 만들면서 몇가지 산업 진흥 조항을 넣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지난 20여년 간의 경험"이라고 역설했다.
디지털경제3.0포럼 공동대표인 김종민 의원은 "디지털경제3.0에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디지털경제 역시 사람이 핵심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며 "디지털경제에 있어 사람은 단순히 소비자, 참여자, 기술자가 아니라 주최·주역이라는 의미"라고 포럼을 창립한 계기를 설명했다. 아울러 "앞으로 고민할 화두를 3가지 키워드로 요약하면 자율과 도전, 협력"이라며 "자유로운 상상력과 선택에서 나오는 혁신, 자율을 발휘할 수 있는 도전환경, 협력한 세력만 살아남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런 키워드로 정책을 고민하고 현장과 함께 호흡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공동대표인 이성권 의원도 "우리나라는 광범위하게 디지털 선진국이라 할 수 있지만 디지털경제 산업영역으로 들어가면 (미국·중국고의) 초격차 두려움이 존재한다. 아직은 초격차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우리가 (경쟁국과) 초격차를 벌려 유지하는 게 과제"라며 "입법지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날 포럼 창립식에 참석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축사에서 "제가 (당 대표로) 선택받은 이유는 국민의 눈높이에, 민심에 더 반응하라는 것, 미래를 향해 더 유능해지라는 것, 뺄셈정치를 하지 말고 외연확장을 하라는 시대정신"이라며 "디지털경제3.0포럼은 그중 미래를 향해 더 유능해지라는 과제를 대변한다"고 의의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이미 세상은 AI 중심으로 가고 있다. 정치가 '감놔라 배놔라' 관여할 사항은 아니고 인프라를 예견하고 필요한 인프라를 신속히 갖추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며 "AI 시대는 과거와 달리 엄청난 전력이 소요된다. 송전망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고 싶다"고 밝혔다.
글·사진=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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