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녀에 5억씩 상속해도 상속세 0원···‘부자 감세’ 논란

김윤나영 기자 2024. 7. 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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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최고세율 50% → 40%
100억 이상 상속 상위 2.5% 세 부담 ↓
5년간 상속·증여세 누적 감소액 18.6조

정부가 25년 만에 상속·증여세율 손질에 나선 것은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만 물려받아도 상속세를 내야 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을 받아들인 결과다.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유독 높고, 그간 아파트 값은 너무 올라 집 한 채 물려주려해도 세 부담이 너무 크다는 여론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부안에 따르면 최고세율을 10%포인트 낮춤으로써 상위 2.5%에 속하는 상속인들에게 감세 혜택이 집중되게 된다. ‘부자 감세’ 논란을 자초하고, 그간 강조해왔던 재정건전성도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24년 세법 개정안을 통해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기로 했다. 동시에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과세표준(공제 등을 제외하고 세금을 매기는 기준액) 구간은 30억원 초과에서 10억원 초과로 낮추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과세표준 30억원 초과 구간의 상속인이 적용받는 세율은 50%에서 40%로 낮아진다. 최저세율(10%)이 적용되는 구간도 과세표준 1억원 이하에서 2억원 이하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과세표준 1억원 초과~2억원 이하 구간에 있던 상속인이 적용받는 세율은 20%에서 10%로 낮아지게 된다.

상속세 자녀 공제금액은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자녀 한 명당 5억원씩 공제받기에 다자녀일수록 상속세도 줄어든다. 상속재산이 총 45억원인데 배우자는 5억원만 상속받고 자녀들이 나머지를 나눠갖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기존에 내야 할 상속세는 12억9000만원으로 자녀 수와 상관 없이 같다. 정부안대로 개정되면 1자녀이면 1억4000만원, 2자녀이면 3억4000만원, 3자녀이면 5억4000만원을 덜 내도 된다. 배우자가 30억원, 세 자녀가 5억원씩을 상속받는 경우라면 상속세는 0원이 된다. 상속재산 45억원 중 배우자가 30억원을 공제받고 세 자녀가 5억원씩 총 15억원을 공제받으면서다.

그간 정부는 상속세 공제 기준은 조정해왔지만 세율 자체를 손대는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다. 2000년에는 원래 45%이던 최고세율을 50%로 올렸는데, 이번엔 오히려 최고세율을 낮춘 안을 내놨다. 정부는 현 상속세 제도가 그간의 물가·부동산 가격 상승을 반영하지 못한 만큼 중산층 세 부담 완화를 위해 개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오랫동안 상속세법이 고쳐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산층의 세 부담이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부자 감세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고세율 인하의 수혜 대상이 상위 극소수인 만큼 부자 감세 논란은 불가피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00억원 넘게 상속받은 상위 457명(2.5%)이 전체 상속세 신고세액(6조3794억)의 절반 가량인 3조735억원을 부담한다. 그 중 500억원 초과 구간의 최상위 29명(상위 0.16%)이 8996억원(14.1%)을 신고했다. 최상위 29명이 내야 할 상속세는 1인당 평균 310억2000만원 수준인데, 만약 정부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이들 초부자들의 세 부담이 5분의 1(평균 62억원)씩 줄어든다.

상속세 감세에 따른 세수 부족도 문제다.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상속·증여세 누적감소액이 18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일해서 5억원을 벌면 근로소득세를 1억원 이상 내야 하는데, 5억원을 상속받으면 세금이 0원이 된다. 노동소득 대비 상속소득에 지나치게 혜택을 주는 것은 조세 중립성에 어긋나고 시장원리에 맞지 않다”면서 “깎아준 상속세 18조6000억원은 결국 노동소득자나 미래세대가 메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매년 걷는 법인세·소득세와 달리 상속세는 사망 단계에서 딱 한 번만 걷는 세금이기에 한 번 줄이면 회복이 안 되는 세수”라며 “정부가 극소수의 자산가를 위해 조 단위의 세금을 깎아주려는 건데 국민적 합의가 있지 않으면 조세저항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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