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녀 상속하면 12억원까지 공제…자녀 많을수록 유리 [2024 세법개정안]
집값 오르면서 중산층 세금으로 변화
정부 "중산층 상속세 부담 완화 기대"
최고세율 40%, 자녀공제 5억원으로
정부가 상속세제 '대수술'에 나선 것은 '1% 부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상속세가 중산층의 세금으로 바뀌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 따른 것이다. 상속세제는 1999년 최고 세율을 50%로 올리고, 최고 세율 과세표준 구간을 50억원에서 30억원 초과로 낮춘 이후 25년간 세율과 과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대부분의 상속인이 적용받는 공제 한도 10억원도 1997년 이후 28년째 묶여 있다. 그 사이 물가와 자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상속세 과세 대상은 14배 이상 늘었다. 서울 평균 집값은 12억원을 넘어서면서 집 한 채를 가진 중산층도 상속세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25년 만의 과표·세율 변경
이날 발표된 '2024년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서 40%로 낮아진다. 한국의 명목 상속세율은 일본(55%)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6%)과 미국·영국(40%), 독일(30%), 프랑스(45%) 등의 수준을 고려해 상속세율을 낮추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대기업의 최대 주주가 지분을 상속·증여할 때 평가액의 20%를 할증 평가하는 제도도 폐지된다. 실질적인 상속·증여세율이 50%에서 60%로 올라 기업 승계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현재 5개(1억·5억·10억·30억원 이하, 30억원 초과)인 과표 구간은 4개(2억·5억·10억원 이하, 10억원 초과)로 줄인다. 특히 하위 과표 구간이 1억원 이하에서 2억원 이하로 확대된다. 과표에 세율을 적용한 뒤 빼주는 누진 공제액도 1000만원씩 올린다.
자녀공제액은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10배 늘린다. 자녀공제액이 상향 조정된 것은 2016년(3000만원→5000만원) 이후 8년 만이다. 기초공제(2억원)와 일괄공제(5억원), 배우자 공제(최소 5억원, 최대 30억원)는 현행대로 유지된다.
기재부가 여러 공제 중 자녀 공제를 올리기로 한 것은 세 부담 완화 효과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상속세는 상속재산에서 공제액을 제외한 과표에 세율을 매긴다. 공제액은 기본적으로 일괄공제(5억원)와 '기초공제(2억원)+인적공제' 중 큰 금액을 적용한다.
문제는 자녀공제가 너무 작다는 점이다. 자녀공제가 일괄공제(5억원)를 넘어서려면 자녀가 7명 이상이어야 한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아서 일반적으로는 일괄공제와 배우자 상속공제(최소 5억원)가 적용되기 때문에 통상 상속재산이 10억원이 넘으면 상속세가 과세된다고 본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실질적으로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려면 일괄공제를 10억원으로 올리거나 자녀 공제를 5억원으로 높여야 했다"며 "다자녀 가구에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 자녀 공제를 5억원으로 상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줄어드는 상속세 부담
개편안이 현실화하면 상속세 부담은 줄어들 전망이다. 예컨대 상속재산이 25억원이고, 상속인이 배우자 1명, 자녀 2명이면 현재 기준으로는 4억4000만원의 상속세가 부과된다. 배우자공제(5억원), 일괄공제(5억원) 등 10억원을 공제한 과표 15억원에 세율 40%를 적용한 뒤 누진공제액(1억6000만원)을 뺀 결과다.
반면 개정안을 적용하면 상속세는 1억7000만원으로 현재보다 2억7000만원 줄어든다. 공제액이 17억원(기초공제 2억원+배우자 공제 5억원+자녀공제 10억원)으로 늘고, 과표(8억원)가 10억원 이하로 떨어지면서 세율은 30%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누진공제액이 1억6000만원에서 1억7000만원으로 늘어난 효과도 있다. 같은 조건에서 자녀가 3명이면 상속세는 현행 4억4000만에서 4000만원으로 4억원 줄어든다.
기재부는 상속세 과표 조정으로 약 8만3000명(5000억원)이 감세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고세율 인하(50→40%)로는 약 2000명이 1조8000억원의 세 부담을 덜게 될 전망이다. 이번 개편에 따른 세수 감소 효과는 4조565억원으로 관측됐다.
특히 중산층의 세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재부는 기대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피상속인(사망자) 중 과세 대상자 비율을 뜻하는 상속세 과세 비율은 역대 최고인 6.82%에 달했다. 2008년 이전만 하더라도 1%를 밑돌았는데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서울은 이 비중이 15.0%에 달했다. 11년 전인 2012년(4.77%)과 비교해 세 배 이상으로 올랐다. 피상속인 기준 서울 시민 100명 중 15명꼴로 상속세를 낸다는 의미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6월 기준 12억1490만원)이 상속공제 한도(10억원)를 넘어선 결과다.
상속세를 자녀 한 명이 실제로 받는 유산에 대해 각각 상속세를 부과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은 이번 개편안에 담기지 않았다. 유산취득세는 각자 상속받은 만큼 세금을 내기 때문에 전체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상속세제 개편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상속세 최고세율 10%포인트 인하,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적용기한 연장 등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기업의 영속성을 높여 조세 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속세제를 개편하려면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 협조가 없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부의 대물림' 비판을 제기고 있는 거대 야당 설득이 관건이다.
박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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