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쟁력’ 내세워 총수일가 ‘승계’ 지원하는 정부

박상영 기자 2024. 7. 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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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몰려있는 강남 일대의 풍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가 비수도권에 있는 기회발전특구에서 창업하거나 이전한 기업에 대해서는 자식에게 지분을 물려주더라도 세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다. 배당을 늘리거나 투자를 확대한 기업에는 상속세 부담을 덜어준다. 정부는 ‘기업 경쟁력’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세제 혜택은 소수의 총수 일가에만 돌아간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했다.

기획재정부가 25일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을 보면 기회발전특구로 창업·이전한 기업은 한도 없이 가업상속공제가 적용된다. 이에 따라 경북, 전남, 전북, 대구, 대전, 경남, 부산, 제주 등에 있는 기회발전특구로 옮기는 기업들은 고용 유지 등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가업과 관련한 주식이나 부동산 등을 자식에게 물려주더라도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기회발전특구는 지방에 대규모 기업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세제·재정지원, 규제특례, 정주여건 개선 등을 패키지로 지원하는 구역을 말한다.

정부는 또 이달 초 발표한 ‘역동경제 로드맵’에서 예고한 대로 배당을 늘리거나 투자를 확대한 기업에 대해서는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최대 1200억원으로 두 배 확대했다.

가업상속공제는 10년 이상 운영한 기업의 원활한 가업상속을 지원하기 위해 상속재산의 일부를 과세 가액에서 공제하는 제도다. 그동안 중소기업이나 매출액 5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이면 가업 영위 기간에 따라 최대 600억원을 공제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에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확대하고, 대상도 자산 10조원 미만 기업으로 넓혔다.

정부는 가업을 물려줄 때 세금이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일부 국가에서는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있다”며 “세계화로 자본 이동성이 높아진 만큼 가업 승계에 대해서는 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가업상속공제는 고용과 사업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 세제지원으로 수도권 집중 문제도 해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 실장은 “최소한 기회발전특구에 본사도 이전하고 근로자도 50% 이상 가야 공제를 받을 수 있다”며 “수도권 집중의 문제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 폐지 방침도 확정했다. 지금까지는 최대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상속·증여하는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고려해 20% 할증해서 평가했다. 기재부는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는 기업 승계와 관련된 것으로,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고용 유지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주로 총수일가만 세제 혜택을 누리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파격적인 세제 혜택으로, 기업이 아니라 소수의 총수일가에게 대부분 이익이 돌아간다”며 “과거와 같은 거점형 지역발전 전략이 지역균형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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