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필리핀 남중국해 보급 합의 진실공방…이행 가능성에 회의론
필리핀과 중국이 영유권 분쟁 중인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 보급 관련 합의를 두고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으며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남중국해 긴장 완화에 도움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합의가 실제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필리핀과 중국의 세컨드 토머스 암초 보급 관련 합의는 양국 외교부가 공동 합의문 공개 없이 지난 21일과 22일 각각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필리핀 외교부는 남중국해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시에라 마드레함 물자 보급과 병력 교대 임무에 합의했으며 영유권 관련 입장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기자 문답 형식의 성명에서 필리핀이 중국에 사전 통보해야 하며, 중국이 현장에서 물자 운송을 검사하는 조건으로 “보급을 허용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측 발표에는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이다. 중국 외교부는 또 필리핀이 대량 기자재를 싣고 시에라 마드레함을 수리·보수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필리핀이 군사기지로 활용할 목적으로 1999년 고의 좌초시켜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정박시킨 시에라 마드레함은 노후화로 인해 파손이 진행 중이다.
필리핀은 중국의 성명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발했다. 필리핀 외교부는 22일 성명을 내고 “양국이 남중국해에서 서로의 입장을 침해하지 않을 것에 동의했다”며 중국 측 설명이 부정확하다고 밝혔다. 필리핀 외교부는 “합의는 선의로 이뤄졌고 필리핀은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밝혔다.
에두아르도 아노 필리핀 국가 안보 보좌관은 24일 “합의 사항에 중국이 물자 보급 과정을 검사한다는 조건은 담겨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양국이 합의 세부 사항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며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측 설명이 사실이건 아니건 중국은 필리핀의 위신을 떨어뜨린 셈이 된다. 사실이라면 비밀 유지 약속도 깬 것이다. 필리핀에서는 ‘굴욕 협상’이라며 합의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필리핀의 전 대법관이자 해상 영유권 문제에 관여해 온 안토니오 카르피오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필리핀 정부가 중국의 사전 통지 및 현장 검사 요구에 동의했다고 믿기 어렵다”며 “중국 측이 이미 악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필리핀 정부에 합의문 공개를 요구했다고 SCMP가 전했다.
합의 이행 여부는 필리핀군이 실제 보급에 나설 때 중국의 대응 조치를 봐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싱크탱크 랜드 코퍼레이션의 수석 국방 분석가인 데릭 그로스먼은 “이 합의는 근본적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시작도 하기 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CNN에 말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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