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신발’부터 ‘노트르담 성당’까지…이번 휴가엔 미술관 가볼까

노형석 기자 2024. 7. 2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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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미술관 전시 풍성
국립대구박물관의 개관 30주년 특별전 ‘한국의 신발-발과 신’에 나온 충남 공주 백제 무령왕릉 출토 왕비의 신발. 2017년 완형으로 복원했다. 노형석 기자

올 여름 휴가철을 맞은 미술 애호가들은 즐겁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이 명품 명작 기획전으로 넘쳐난다. 광주에서 월북화가 배운성의 ‘가족도’와 천경자의 40~50년대 꽃그림이, 부산에서는 거장 로버트 카파의 원작 사진이 기다린다. 대구에선 1400~1500년 전 고대인의 금동신발들이, 강릉에선 미국 여성거장 아그네스마틴의 미니멀 그림들이 손짓한다.

호남에 처음 선보인 한국근대미술사의 명작들

한국화 대가 천경자가 1940~50년대 손수 그린 연필과 수채 드로잉, 정물화를 뚫어지게 감상한 적이 있는가? 지금 광주시립미술관 3층 전시장에 가면 이 미술관 컬렉션과 개인수장가한테서 나온 인물과 풍경을 그린 초창기 드로잉과 소담한 꽃 그림을 눈여겨볼 수 있다. 이중섭의 친구였던 박고석이 노란빛과 푸른빛을 섞어가며 경쾌하게 그린 설악산 울산바위의 풍경도 구경할 수 있다.

국내 근현대 대가들의 유명한 명작과 낯선 문제작들을 100점 넘게 볼 수 있는 이 전시회는 나라 안의 7개 미술관과 가나문화재단, 이건희 컬렉션 등에서 대여한 근현대 작가 30여명의 미술품들로 차린 ‘한국미술명작’ 특별전이다. 지난 6월초부터 시작된 전시는 4개의 소주제로 나눠 한국화와 양화, 조각을 망라한 참여작가(구본웅, 권옥연, 권진규, 김기창, 김은호, 김환기, 문신, 문학진, 박고석, 박노수, 박래현, 박생광, 박수근, 배운성, 변관식, 신학철, 양수아, 오윤, 오지호, 유영국, 이대원, 이상범, 이성자, 이우환, 이응노, 이인성, 이중섭, 임직순, 장욱진, 전혁림, 천경자, 최욱경, 하인두, 한묵, 허백련)들의 주요 작품들을 내걸었다.

국내외에서 한국 근대미술품들을 모은 기획전을 할 때마다 전시의 얼굴 격으로 포스터에 들어가곤 하는 월북작가 배운성의 대표작 ‘가족도’가 처음 호남 나들이를 했다는 점도 뜻깊다. 지금도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가족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놓고 화가의 가족인지, 그를 후원한 이의 가족인지 논란이 계속되는 미스터리한 그림을 보며 더위를 식히는 것도 좋겠다.

1층에 차린 ‘우주의 언어-수’는 국내 예술가들이 수학의 세계를 나름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근작, 구작들을 모은 색다른 기획전. 이이남, 김현호, 오현금, 전인경 등 작가 22명이 개성적인 시각언어로 수학의 역사와 수리 모형, 기술공학 등을 해석한 작품들을 내놓는다. ‘각시탈’‘무당거미’‘타짜’‘식객’ 등으로 유명한 만화대가 허영만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광양 전남도립미술관의 기획전 ‘종이의 영웅-칸의 서사’는 만화 애호가들의 관심 속에 내달 6일 막을 올린다.

대구에 집결한 고대 왕족의 금동신발들

영남권에 피서를 가는 문화유산 애호가들이라면 대구를 놓치면 안된다. 9월22일까지 이어지는 국립대구박물관의 개관 30주년 특별전 ‘한국의 신발-발과 신’에서는 지난 100년간 한반도 고대무덤에서 출토된 당시 선조 귀족들의 금동신발들을 모아놓은 전시 성찬을 펼쳐놓고 있다. 백제 무령왕릉 출토 왕비의 신발과 경주 신라 식리총에서 나온 괴수 무늬 그려진 신발의 금판바닥, 경주 황남대총에서 나온 금동신발 등이 한 진열실에 모여 각기 존재감을 뽐낸다. 백제와 신라, 고구려 등의 삼국 귀족과 장인들이 신발에 표출한 각기 다른 디자인 감각을 음미하는 재미가 있다.

전시는 경북 경산 임당동 고분에서 나온 고대인의 짚신 자락과 여러 유적에서 나온 고대 나막신들, 조선시대 관리들이 신던 신발, 현재 유명 인사들인 성철 스님, 이해인 수녀 등이 신던 신발까지 다채로운 신발의 역사를 두루 꿰어 보여준다.

부산으로 휴가를 즐기러 가는 이들에겐 해운대에 있는 고운사진미술관의 로버트 카파 특별전이 기다린다. 스페인 내전에서 전투중 총을 맞고 쓰러지는 공화파 병사의 사진으로 기억되는 이 거장의 명작들을, 세계 각지의 전쟁과 분쟁 지대를 찾아가 찍은 긴박감 넘치면서도 인간적인 보도사진들이 100장 넘게 젤라틴 실버 프린트 원화로 두루 볼 수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여름특별전 ‘한국미술명작’에 나온 이중섭의 1950년대 그림 ‘해초와 아이들’.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서울에서 선보인 인디언미술과 노트르담 성당의 미디어아트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미국 인디언들의 이동식 가옥과 그들의 옷, 수예품, 그리고 질박하고 인간 친화적인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인디언 미술 생활 유산들을 처음 대규모 실물로 소개한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이 지난달 개막해 열리는 중이다.

이동식 가옥 티피로 시작하는 이 전시는 미국 동서남북에 흩어져 살던 여러 인디언 계통 부족들의 도자기와 옷, 각종 생활도구, 무기 등을 구체적으로 분류하고 짚어주면서 설명해준다. 특히 과거 이들을 약탈, 학살하고 정복한 백인들의 시각에서 그려진 이들의 삶과 생활모습을 그렸던 양화풍의 그림들과 오늘날 인디언 후예 아티스트들이 팝아트 등 현대미술 흐름에 맞춰 그들 스스로의 정체성과 문제의식을 표출한 작품 실물들이 처음 나왔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상설관 기획전시실에 차려진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옛 칠기 명품 전시회는 3국 국가박물관의 협력 전시다. 18세기 청나라 때의 정교한 세공 칠기 작품과 17세기 명나라 쇠망기 때의 ‘중화(中和)’ 글씨가 쓰인 칠기 칠현금, 일본의 칠회 기법인 마키에를 활용한 귀족, 무사들의 집기, 고려 조선시대의 나전 경함과 사물함 등이 나와 각기 다른 지역적 개성을 내보이며 관객들을 손짓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달초부터 열리고 있는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복원 과정을 다룬 미디어아트 전시는 실제 유물은 없고, 손에 든 노트패드로 성당의 중세 창건기부터 지금까지의 여러 역사와 정교한 복원 과정을 마치 현장에 있듯 몰입감을 안겨주며 빠져들게 하는 첨단 트렌드의 문화유산 전시다.

강릉에선 미니멀 대가 아그네스의 정갈한 그림이 기다린다

지난 2015년 출토된 이래 수년간의 복원을 거쳐 황금빛이 가장 찬란한 불상의 걸작으로 새롭게 떠오른 강원도 양양 선림원터 출토불상의 특별전은 28일 막을 내리지만, 여전히 많은 애호가들의 발길을 전시장인 국립춘천박물관으로 이끌고 있다.

올초 개관한 강릉의 솔올미술관에서는 20세기 서구 현대미술사에서 대표적인 여성화가의 거장으로 꼽히는 미니멀리스트 아그네스 마틴의 회고전이 한국 단색조회화 작가 정상화씨의 작품과 함께 관객을 맞고 있다. 멀리서는 멀건 단색조의 색면 같지만 가까이 가면 선과 미세한 색의 결이 느껴지는 우아하면서도 단정한 그림들이 관객의 마음과 눈을 정적인 환각 속으로 젖어들게 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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