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불 지르고 총격 ‘갱단 지옥’···멕시코 주민 580명 강제 이주
범죄 조직 간 세력 다툼 과정에서 총격과 재산 약탈 등이 벌어지자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민 수백 명이 과테말라로 집단 피신했다.
24일(현지시간) 과테말라 일간지 라호라에 따르면 베르나르도 아레발로 과테말라 대통령은 이날 솔롤라에서 취재진에게 “멕시코 주민이 폭력을 피해 우리 영토로 왔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다”며 “난민 성격의 이들을 정부에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테말라 정부의 서류를 입수한 AP통신은 최근 치아파스주에서 국경을 넘어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주 쿠일코에 도착한 인원이 580명이라고 보도했다. 어린이, 노인 등을 동반한 가족 단위도 있었다. 당뇨병을 앓던 91세 여성이 급하게 도망 오다 약을 챙기지 못해 길에서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과테말라로 피신한 이주민은 식량이 부족하고 범죄 조직 간 싸움으로 인한 피해가 커 집을 떠나왔다고 진술했다. 보통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가려는 이주민들이 과테말라에서 멕시코로 이동하지만, 갱단 피해로 치아파스주를 떠나는 역방향 이주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치아파스 ‘엑소더스’(대탈출)는 멕시코 갱단 시날로아와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의 싸움으로 최근 2년간 이어지고 있다. 2022년 시날로아의 내분을 틈타 CJNG는 과테말라 접경 지역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양측이 무력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치아파스에는 멕시코와 과테말라를 나누는 수치아테강이 있는데, 이곳에서 마약·총기 밀수와 미등록 이민자 월경 등 갱단의 ‘수익성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 사이 접경 마을은 황폐해졌다. AP통신은 지난달 무장 단체가 틸라 마을에 있는 주택에 불을 질렀고, 이후 약 5000명이 집을 떠났다고 전했다. 지난 1월에는 카르텔 간 전투가 벌어져 치코무셀로 주민 2명이 사망했다. 치아파스주 주민들은 갱단이 농작물을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강요하거나, 7시간 동안 내내 마을에서 총격이 벌어져 집 안에 총알이 날아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치아파스 주민들은 자국 정부도 불신하고 있다. 이들은 경찰과 군인이 갱단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사례가 많으며, 갱단 피해를 경찰에 신고해도 늦게 현장에 출동했다며 원성을 높였다.
오는 10월 취임하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당선인은 갱단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 수사관과 주 방위군 인력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지역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갱단을 모두 물리치기는 요원한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갱단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경제력이 강해졌으며, 선거 때마다 후보를 피습하는 등의 방식으로 정치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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