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잘못된 법은 정의를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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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여성을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A씨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작년 1월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원으로 감형받았다.
A씨가 항소심 선고를 엿새 앞두고 합의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법원에 공탁한 게 감형 사유가 됐다.
이런 식으로 가해자가 판결 선고 직전에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법원에 불쑥 돈을 맡기는 것을 '기습 공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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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여성을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A씨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작년 1월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원으로 감형받았다. A씨가 항소심 선고를 엿새 앞두고 합의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법원에 공탁한 게 감형 사유가 됐다.
이런 식으로 가해자가 판결 선고 직전에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법원에 불쑥 돈을 맡기는 것을 ‘기습 공탁’이라고 한다. 이 제도는 지난 2022년 12월 공탁법에 도입됐다. 애초 취지는 공탁하려면 피해자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 가해자가 피해자 정보를 알아내 2차 가해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기습 공탁’은 가해자가 감형을 받아내는 편법으로 이용됐다. 대법원 양형 기준이 공탁을 ‘상당한 피해 회복’으로 보면서 감경 사유로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지난 2022년 12월부터 작년 10월까지 형사 1·2심 재판의 공탁 998건 중 558건(56.4%)이 판결 선고 전 2주 이내에 ‘기습 공탁’으로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법원도 ‘기습 공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보복 운전을 하다 사망 사고를 일으킨 혐의로 기소된 B씨는 지난 4월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B씨가 판결 선고 전날 사망한 피해자 유족을 위해 공탁을 했지만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기 때문에 형 감경 이유로 삼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도 지난 23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결국 법무부도 ‘기습 공탁’의 문제를 인정하고 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판결 선고가 임박한 시점에 가해자가 공탁을 하는 경우에 법원이 피해자 의견을 반드시 듣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법 개정안은 지난 23일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조만간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피해자가 합의할 의사가 없다고 하는 경우에는 가해자는 ‘기습 공탁’으로 감형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기습 공탁’은 법을 만들면서 부작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 결과로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지 않는데도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합의금 명목으로 공탁하고 감형을 받은 사례가 잇따라 나왔다. 잘못된 법은 정의를 해친다.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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