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항의는 시작에 불과했다. '사상초유' 주심의 S판정마저 뒤집어졌다…대혼란 몰아친 수원 [수원포커스]
[수원=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주심이 자신의 스트라이크 판정을 오심으로 규정짓고 번복했다. 규정에 따른 명백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사상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올해부터 프로야구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스트라이크-볼 판정, 투수-포수 간의 사인 교환이 기계를 통해 이뤄진다. 내년부턴 피치클락을 통해 투수의 투구 준비시간도 제한된다.
편리하고 보다 정확하다. 다만 준비된 시스템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이야기다. 24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KT 위즈 경기는 그렇지 못할 경우 현장이 겪게 될 혼란이 드러난 경기였다.
그 시작은 SSG 김광현이었다. 김광현은 1회말 1사 KT 김상수의 타석에서 심판진과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언뜻 보기에도 불만에 가득찬 표정이었다.
KBO와 SSG 구단에 따르면 김광현은 '응원 앰프 소리 때문에 피치컴(포수 및 야수와 사인을 교환하는 기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항의를 했다. 응원단의 앰프 소리가 너무 커 사인을 교환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얘기였다.
시작에 불과했다. 양팀이 1-1로 맞선 6회초, 경기의 흐름을 단번에 뒤틀어버리는 사고가 터졌다.
SSG 선두타자 추신수가 안타로 출루하고, 무사 1루 최정의 타석.
양팀 공히 에이스인 김광현-쿠에바스가 출격한 경기다. 승부처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ABS(자동볼판정 시스템)에 오류가 거듭됐다.
투구 추적은 됐다. 다만 2구부터 5구까지의 볼판정이 문동균 주심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정종수 3루심의 수신기는 정상 작동했다. 1구1구, 주심이 3루심의 수신호를 주시하며 콜을 하는 기묘한 상황이 펼쳐졌다.
6구째부터 ABS가 제대로 작동했다. 최정이 볼넷으로 출루하며 무사 1,2루가 됐다.
다음 타자 에레디아의 1구 때 또 오류가 났다. 주심, 3루심 모두 판정을 전달받지 못했다. 두 심판들은 장비를 다시 체크했다.
2구째는 131㎞ 체인지업. 또 ABS 신호가 울리지 않았다. 심판은 결국 마이크를 잡았다. "ABS가 작동되지 않아 심판 자체 판정을 하겠다. 에레디아의 2구째는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했다.
ABS가 작동되지 않을 경우 심판의 자체 판정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KBO ABS 운영팀이 콜이 거듭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주심에게 자체 판정을 요청한 것.
하지만 주심은 투구 추적이 정상적으로 이뤄진 걸 몰랐다. 더그아웃에 비치된 ABS 태블릿 PC에는 문제의 공이 볼로 표시됐다. 이숭용 SSG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강철 KT 감독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미 선언된 볼 판정을 뒤집으려는 심판진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6회 시작 시점에 이미 80구를 넘어선 쿠에바스의 모습도 눈에 밟혔다. 거듭된 경기 지연 상황에 리듬이 완전히 끊겼다. 결국 심판진은 볼로 정정하는 선택을 했다.
KBO 관계자는 "주심이 ABS 판독에 따르는게 정확한 절차다. 원칙적으로는 SSG 측이 항의하기 전에 ABS의 추적을 확인한 KBO 운영직원이 뒤늦게 콜이 이뤄졌음을 전달했어야한다"며 현장의 운영 미숙을 인정했다.
이어 "규정상 '투수가 다음 공을 던지기 전', 이닝 종료시 '20초 전'에 항의가 이뤄지면 ABS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따르도록 돼있다. 주심의 (번복)선택은 옳았다, 혼란 최소화를 위한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5분여 만에 이뤄진 쿠에바스의 3구는 에레디아의 손목에 맞았다.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는 에레디아에게 쿠에바스가 미안함을 표했다. 이강철 감독은 마운드에 올라 쿠에바스의 상태를 살폈고, 결국 교체했다.
에레디아의 사구는 이날 주심이 '자체판정'한 유일한 1구다. 다음투수 성재헌부터 ABS가 정상화됐다.
KT는 이어진 7회초에 2점을 내줬지만, 7회말 4득점을 따내며 경기를 뒤집고 승리를 따냈다.
이날 지명타자로 나선 KT 장성우는 "더운 날씨 속에 우리 수비 상황이라 투수, 야수들이 힘들었을 것 같다. 쿠에바스는 이미 80구를 넘긴 상황에서 계속 템포가 끊겨 힘들었을 것"이라며 안쓰러워했다.
경기 운영기기의 거듭된 오류에 5이닝 1실점(무자책)으로 역투하던 쿠에바스만 피해자가 됐다. 서로를 배려한 쿠에바스와 에레디아의 아름다운 장면만 남았다.
수원=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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