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메시지 앞세워야 할 저출생 대책[시평]

2024. 7. 25. 11:4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초빙석좌교수
인구 비상사태 선포 불구하고
국민은 인구감소 불감증 조짐
온갖 지원책도 단기적 효과뿐
물질적 접근 땐 비용 점점 증가
자녀 동반 패스트트랙 방식의
배려와 양보 위한 대책이 중요

저출생 위기에 따라 지난 6월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신속한 정책 제시와 시행이 필요할 만큼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국민은 저출생으로 인한 위기를 그다지 심각하게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먼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에도, 그리고 기후변화로 국내 여러 도시가 앞으로 100년 이내에 바다에 잠기게 될 것이라는 예측에도 우리는 무감각하다. 이처럼 저출생으로 인한 문제 또한 미래에 현실화할 것이며 바로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체감지수가 낮다. 당장 닥친 부정적인 상황이 아닌 것을 미리 불안해하고 싶지 않은 낙관적 편향 사고가 인구 감소 불감증을 초래한다.

저출생에 대한 정책은 오래전부터 시행돼 왔다. 이미 1996년에 ‘출산 장려 정책’이 발표됐고, 2016년에는 ‘종합출산지원대책’도 있었다. 출산율 감소를 인지한 지 30년 가까이 지난 것이다. 그러면 출산율은 어떻게 됐는가. 2016년까지 40만 명을 웃돌던 연간 출생아 수가 지난해에는 23만 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합계출산율은 8년째 하락해 이제 0.65명이 됐다. 국가 경제가 위협받게 되고 여러 사회 문제가 생기면서 한국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이런 비상 상황에서 정부는 일·가정 양립 지원 확대, 아동 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 출산 가구의 주택 마련 비용 경감과 관련된 여러 정책을 내놨다. 당장 결혼과 출산을 앞둔 사람들에게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이나 난임 부부, 장애인 관련한 지원 등 좀 더 구체적이고 차별화된 대책이 꼼꼼히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지원금만으로 심리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물질적인 지원에 대한 만족감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으니 비용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때로는 부모의 불안심리, 경쟁심리에서 비롯된 사교육도 과감히 차단할 수 있는 극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 구성원의 삶에 대한 본질적 성찰도 필요하다.

압축 성장으로 이룩한 경제 발전 뒤에, 지나친 성과와 성공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경쟁 압박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사랑이나 출산마저도 억압시켜 버렸다. 승진과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인생, 물질 지상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자녀를 키우기 위한 시간과 경비를 부담할 만큼 내 인생은 여유롭지 못하다는 생각, 더욱이 타인과의 비교가 빈번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내 자녀가 지금의 나보다도 여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은 젊은 세대가 선뜻 출산과 양육을 선택하지 못하게 한다.

출산이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경제적·시간적·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아이와 함께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하면서 부모도 성장하고 아이로 인해 인생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여러 순기능이 있다. 이런 긍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 필요하다. 위기·비상·국가 소멸이라는 외침은 되레 불안만 더 키울 뿐이다. 심지어 ‘저출생’이라는 용어 자체에서 느끼는 피로감은 분명 우리 사회에 치명적일 수 있는 위기 상황을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게까지 만든다. 현재 만연한 불안감에 또 다른 불안 요소가 더해지고 결국 저출생이라는 악순환만 심화시킬 수 있다.

물론 성공 지향주의로 인한 경쟁 압박에서 벗어나, 좀 더 희망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 분위기, 더 여유롭고 배려하는 성숙한 사회 분위기 조성은 단기간에는 어려운 일이다. 반려견은 허용되나 자녀 동반은 허용되지 않는 노키즈존이 아니라, 자녀 동반 패스트트랙과 같은 양보하고 배려해 주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불안감 조성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가 전달돼야 한다. 지금부터 노력해도 그 결과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얻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안정감과 행복감이 가져올 장기적 결과는 매우 클 것이다.

저출생 위기만을 강조하는 것은 여러 불안 심리만 자극할 수 있다. 자녀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 눈살을 찌푸리면서 그들에게 국가 소멸의 책임을 돌리는 또 하나의 갈등. 이러한 집단 차별화 갈등이 우리 사회에 더해질 수 있다는, 필자의 불안감이 단순한 우려로 끝났으면 좋겠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초빙석좌교수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