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병’ 걸린 사회… 말하는 자들만 있고 듣는 자는 없어”

장상민 기자 2024. 7. 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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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병은 '듣기'가 안 된다는 겁니다."

이어, '말병'의 치료법, 즉 듣지 않는 사회의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듣기의 바탕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정치·사회적 견해를 교양 있는 언어로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해요." 상대방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자신도 상대방이 잘 들을 수 있도록 교양있는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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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훈, 산문집‘허송세월’북토크서 일침
“무슨 말해도 안믿으니 단절
교양있는 말투부터 배워야
현실 발딛고 있는 글이 좋아
인생을 몸으로 살아나가길”
김훈 작가는 ‘김훈’이라는 소설이 있으면 어떤 문장으로 시작하느냐고 묻는 독자의 질문에 “아직 안 써봐서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서 꼭 쓸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제공

“우리 사회의 병은 ‘듣기’가 안 된다는 겁니다.”

소설가 김훈(76)이 24일 저녁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한국 사회를 냉엄하게 진단했다. “말하는 자들만 있고 듣는 자가 없으니 인간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담벼락에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쓴소리했다.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가 드문 김 작가는 이날 300여 명의 관객들 앞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도 안 믿는 세상에서 말을 하면 할수록 인간 사이는 단절된다”고 꼬집었다. 또한, ‘파괴된 관계’ 때문에 “민주주의도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를 향해서도 비판의 말을 이어갔다. “다들 ‘말병’이 걸린 것 같다. 악다구니와 저주와 욕설이 가득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말병’의 치료법, 즉 듣지 않는 사회의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듣기의 바탕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정치·사회적 견해를 교양 있는 언어로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해요.” 상대방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자신도 상대방이 잘 들을 수 있도록 교양있는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노년의 일상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산문집 ‘허송세월’(나남)을 펴낸 김 작가는 읽고 쓰는 삶에 대한 소회도 풀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한 독자의 질문에 “솔직히 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책을 읽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사회의 사건을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어야 한다”면서 “사고와 참사를 마주하고 인생에 대해 생각하며 몸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평소 법전과 연구서, 연암 박지원의 글을 자주 읽는다면서 “현실에 발 딛고 있는 글이 좋다”며 웃었다.

소통 부족 사회와 현실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김 작가는 이날 북토크 현장을 내내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특히, 그가 요즘 ‘밥’과 ‘똥’과 같은 명사에 흥미를 느끼고, ‘먹다’와 ‘싸다’와 같은 동사에 몰두하고 있다고 하자 박장대소가 터졌다. 그는 “사람들이 밥은 가장 좋아하면서 똥은 가장 혐오한다”면서 “먹고 싸는 행위가 하나로 연결돼있는 인간이 참 재밌지 않냐”고 반문했다. “고층 빌딩을 보면 똥이 거대한 통로로 모여 바다를 이루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생각도 허송세월하는 것이죠.”

김 작가의 신간 ‘허송세월’은 현재 주요 서점 에세이 분야 1위에 올라있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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