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119) 샴페인에 푹 빠진 ‘위스키업계 대부’ 김일주 회장
샴페인부터 크레망, 스파클링와인까지 제품 다양한 ‘골든블랑’ 2021년 출시
브랜드, 패키지 디자인은 한국에서…제품은 샹파뉴를 비롯한 프랑스에서 생산
“올 여름에 1만원대 스파클링와인 선보여, 맥주시장에 도전하겠다”
“쌀소비 외면하는 정부의 주세정책 안타까워…소주시장에도 진출할 터”
드링크인터내셔널 김일주 회장을 기자가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2000년대 초반,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위스키 신제품 런칭 행사였던 것 같다. 20년도 더 지난 때이지만, 그의 첫인상은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180은 돼 보이는 장신에, 싱글정장이 잘 어울린 그는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젠틀맨’이었다. 단정하게 빗어넘긴 헤어 스타일도 남달랐다(그의 헤어스타일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당시 술 취재를 꽤 오랫동안 맡고 있던 기자가 ‘그 만남’ 이후 자주 그에게 연락했던 이유는 물론 그의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마케팅 담당 임원이었고, 기자들의 소통창구를 맡은 홍보 담당 임원은 따로 있었지만, 기자는 홍보 임원이 아닌 그를 대상으로 자주 취재를 했다. 기자의 까칠한 질문을 귀찮은 내색도 없이 위스키를 얼음잔에 편하게 마시듯, 답변을 술술 풀어나가는 해박한 입담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위스키에 관한 한 그 어떤 질문도 그처럼 쉽고, 명확하게 답을 주는 위스키업계 종사자는 당시 국내에 아무도 없었다.
1983년 첫 직장으로 백화양조에 입사하면서부터 위스키 영업과 마케팅을 시작한 그는 2019년부터는 자신이 세운 드링크인터내셔널의 회장으로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 올해 2024년까지 만 41년간 위스키 업계 종사자로 일하고 있으니, 이 기록을 깰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국내에는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윈저 위스키, 임페리얼 키퍼(위조 방지 캡), 저도수(알코올 도수 36.5도) 위스키의 선두주자 골든블루 등 그의 손을 거쳐 나간 위스키는 지금도 국내 위스키 시장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산 브랜드 위스키 역사 자체가 김일주 회장 한 개인의 프로필인 셈이다. 2013년에는 싱글몰트 위스키인 글렌피딕과 발베니를 유통하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를 맡아, 당시 국내에 생소했던 싱글몰트 위스키 저변을 크게 확대한 주역도 그다.
그는 마케팅 전문가다. 위스키 개발과 제조를 담당하는 ‘위스키 마스터 블렌더’도 아니지만, 그는 웬만한 위스키 생산 전문가보다 자신이 위스키를 더 잘 안다고 자부한다. 심지어, 업계 1~2위인 윈저, 골든블루 위스키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서슴치 않고 말한다. 윈저, 골든블루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는 사실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기 어렵다. 다양한 위스키 원액을 선택해, 블렌딩한 시제품은 또 여러 전문가들의 시음을 거쳐 끊임없이 미세한 조정을 거친 다음에야 세상에 나올 채비를 마친다. 윈저와 골든블루가 각기 세상에 나오기까지 짧지 않은 개발 공정을 당시에 주도한 인물이 바로 김일주 회장이니, ‘내 작품’이라고 할 만 하지 않은가?
그가 오너인 드링크인터내셔널은 그 자신이 대히트시킨 임페리얼 위스키가 대부분의 매출을 차지하고 있다. 임페리얼의 독점 판매권을 드링크인터내셔널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김일주 회장이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주종은 위스키가 아니다. 샴페인, 스파클링 와인이다.
2021년 김일주 회장은 샴페인을 포함한 스파클링 와인 브랜드 ‘골든블랑(Golden Blanc)’을 출시했다. 제품은 프랑스 샴페인의 본고장 샹파뉴에서 만들지만, 브랜드와 패키지 디자인 등은 한국에서 했다. 말하자면, 주문자생산표시(OEM) 제품이다. 한국 회사가 만든 최초의 샴페인 브랜드인 셈이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 안에서 만든 제품만 샴페인 이름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골든블랑은 샴페인(5스타), 크레망(4스타), 스파클링 와인(3스타) 등 크게 3종류의 스파클링 와인이 있다. 클럽과 유흥업소 대상인 최고급 샴페인(6스타, 7스타)도 따로 있다. 영어와 불어를 섞어 쓴 브랜드도 독특하다. 황금빛 버블을 상징하는 ‘골든(Golden)’과 샴페인 원액을 뜻하는 ‘블랑(Blanc)’을 합쳐 이름을 만들었다.
가장 비싼 골든블랑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에서, 기존 샴페인 제조방식 그대로 만든 제품이고, 그보다 하나 아래 단계인 골든블랑 크레망은 제조방식은 동일하되, 생산을 샹파뉴 밖의 프랑스에서 하는 제품이다. 골든블랑 스파클링 와인은 프랑스에서 만들지만, 샴페인보다 숙성을 짧게 하는 등 제조방식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가성비는 가장 높아,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 골든블랑 스파클링와인이다. 소비자 가격이 3만원대.
골든블랑 샴페인 역시 ‘마케팅 전문가’ 김일주 회장의 역량이 돋보인 제품이다. 프랑스 본고장에서는 샴페인 종류가 수백가지에 이르지만, 하나의 브랜드에 샴페인, 크레망, 스파클링와인을 같이 생산하는 경우는 없다. 샴페인, 크레망, 스파클링 와인 브랜드가 각기 따로 있다. 그런데, 골든블랑은 세가지 스파클링 와인이 다 있다. 다만, 등급은 달리 해서 3스타는 스파클링 와인, 4스타는 크레망, 5~7스타는 샴페인으로 구분돼 있다. 김일주 회장은 “전세계 스파클링와인 시장에서 하나의 브랜드에 샴페인, 크레망, 스파클링와인이 모두 있는 브랜드는 골든블랑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와인시장 전체는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샴페인을 필두로 한 스파클링와인 시장은 성장세가 꾸준한 편이다. 이런 점을 모를 리 없는 김일주 회장은 고급 샴페인 구매층부터 합리적 가격대의 스파클링와인 소비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샴페인 브랜드 골든블랑을 내놓은 것이다.
술병 전체를 황금색으로 감싼(골든 메탈 페인팅) 골든블랑 패키지 디자인 역시 눈에 확 띤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젊은층 감성을 감안한 디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맛은 어떨까? 5스타 골든블랑 샴페인을 맛봤다. 살구향, 백색과일류 향, 그리고 벌꿀향이 느껴졌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미세한 거품 역시 샴페인의 품격을 보여주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색깔 마케팅도 새롭다. 샴페인을 마시기 좋은 온도(대략 7도 내외)로 병이 칠링이 되면 골든블랑의 브랜드 뮤즈 ‘페가수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말로, 영혼의 불멸을 상징)’가 회색에서 핑크빛으로 바뀐다. 마케팅 전문가인 김일주 회장의 역량이 총결집된 제품이 골든블랑이다.
골든블랑을 개발하게 된 스토리부터 김회장에게 물었다.
“주류 음용 문화의 변화로 인해 유흥업소에서 소비되는 위스키의 양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신제품으로 위스키보다는 다른 카테고리를 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에 근무할 당시 일본 시장도 담당하고 있어서 일본 출장 기회가 많았는데 일본 유흥업소에서는 위스키와 샴페인이 거의 반반 정도로 판매되고 있었다. 젊은 소비자들이 일반 생수 대신 탄산수를 많이 마시는 트렌드를 보니 탄산이 있는 주류가 대중화 될 것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개발에 착수한 것이 샴페인이다. 샴페인 골든블랑은 한국에서 브랜드 및 패키지 디자인을 개발하고 생산은 215년 역사를 지닌 정통 샴페인 하우스 ‘볼레로’에서 담당한 제품이다. 한국 최초로 프랑스 샴페인협회 인증까지 받은 제품이다. 40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신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해 왔지만, 골든블랑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제품은 없었다. 2021년 7월 첫 제품(골든블랑 5스타)을 출시한 이후에 2021년 11월 크레망 (골든블랑 4스타)과 프렌치 스파클링 (골든블랑 3스타)을 출시했고 작년에 프리미엄 빈티지 라인(골든블랑 7스타, 골든블랑 6스타)을 출시했다. 올 여름에는 대중적 가격대의 제품도 출시할 계획이며, 이러한 포트폴리오는 전 세계 어느 샴페인 회사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포트폴리오 전략이다.”
-8월에 나온다는 골든블랑 신제품을 자세히 소개해달라.
“국내 주류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은 맥주다. 골프장을 가보면 운동 중간이나 운동 후에 시원하게 한잔 마시는 술은 대부분 맥주다.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손님들이 목을 축인다고 먼저 한잔 마시는 술 역시 맥주가 아닌가. 종합주류회사를 추구하는 우리에게도 그래서, 맥주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제품이 필요했다. 골든블랑 제품 중에는 스파클링와인이 가장 저렴하지만, 이 제품마저 소비자가격이 3만원이 넘어 식당에서 마시기는 부담이 있다. 식당에서는 6만원 안팎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가격 1만원대인 ‘가성비 갑’ 골든블랑 스파클링와인을 곧 출시한다. 아마, 식당에서는 2만~3만원 정도를 받을 것 같은데, 알코올 도수는 다른 제품과 같은 12도, 용량도 750ml이다. 요즘 생맥주 한잔도 만원이 넘는 곳이 많지 않은가? 골든블랑은 양이 많아 서너 명이 같이 마실 수 있으니, 맥주보다 오히려 더 실속있는 ‘식전주’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41년째 현역으로 주류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주종목은 위스키다. 그런데, 요즘 싱글몰트 위스키를 비롯해 고급 위스키 시장이 반짝 떴다가 다시 주춤하는 모양새다. 유흥업소용 위스키는 바닥을 모르고 계속 떨어지고 있다. 현재 위스키 시장을 진단해달라는 질문 역시 그가 아니면 누구에게 하겠나.
“유흥업소 위스키 소비량 감소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앞으로도 감소할 것이다. 고급 위스키 시장 역시 코로나 기간을 거치며 대폭 증가했으나 경기침체 영향으로 현재는 주춤한 상황이다. 현재 늘어나는 위스키 수요는 대부분 하이볼용으로 사용되는 저가 위스키이다.
국내 위스키 시장이 다시 증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2차주(식사를 마친 다음에 마시는 술)에서 벗어나 식사와 함께 하는 1차주(식중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이볼용 저가 위스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위스키들과 다양한 음용법들이 선보여야 한다.”
위스키가 식중주로 적합하지 않은 것은 높은 알코올 도수 탓이 크다. 위스키는 평균 알코올 도수가 40도다. 이렇게 도수가 높은 술은 음식 페어링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위스키 도수를 획기적으로 낮춘 제품이 인기인데, 그게 바로 하이볼이다. 편의점에서 수제맥주를 몰아냈다고 얘기 듣는 주종이기도 하다. 실제로 편의점에 가보면 수십종의 하이볼이 애주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선뜻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주종이 하이볼이기도 하다.
-국내 하이볼 시장에 대한 평가는?
“현재 국내 하이볼 시장의 문제는 위스키 본연의 맛이 아니라 토닉워터의 단맛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고품질의 위스키보다는 주정이나 저급 위스키를 사용해 가격을 낮추는 데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편의점 업계가 요구하는 중저가 가격대를 맞추려면 하이볼 제조업체들도 고급 재료를 쓰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하이볼 시장이 오래 가려면 일본처럼 위스키마다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고품질의 하이볼이 유행해야 한다.”
위스키 마케팅의 대부인 김일주 회장이 사훈처럼 강조하는 말은 ‘끊임없는 도전’이다. 새로운 일에 뛰어든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그는 위스키 말고 샴페인, 스파클링와인 사업에도 뛰어들었고, 또 어느 정도 성과도 내고 있다. 이제 그의 눈빛은 그 다음을 향하고 있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였는지 모른다. 국내 소주시장 진출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거침없던 답변과 달리 이 질문에 대해서는 그답지 않게 다소 신중하다.
-연간 매출이 4조가 넘는 한국 소주는 외국산 농산물로 만들어, 국내 농산물 소비를 외면하고 있다. 국내 소주 시장을 어떻게 보나?
“정부가 세수의 안정적 확보를 이유로 소주시장 진입 문턱을 지나치게 높여, 시장의 자연스런 성장을 저해했다. 업계도 정부의 비호 아래 그동안 경쟁없는 성장을 누려왔다. 변화와 혁신을 거부했다. 다양한 소주가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은 정부의 세제 때문이다. 고급 원료를 쓸수록 세금을 많이 매기는 종가세(가격에 세금을 부과하는 형태로, 제조원가가 높을수록 높은 세금을 낸다)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화요, 일품진로 같은 술은 정말 좋은 술인데도, 세금 구조상 더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나지 못해 안타깝다. ‘개성 있는 소비’가 주류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 시점에 새로운 스타일의 증류식 소주가 점점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주세가 지금의 종가세에서 종량세(제조원가 상관없이 술 양에 세금을 매기는 형태로, 고급술일수록 세금 비중이 낮아진다)로 전환되면 정말 좋은 술들이 쏟아질 것이다.”
-과잉생산되고 있는 쌀 소비를 촉진할 묘안도 있나?
“일년에 정부가 사들이는 쌀이 20만톤이다. 일년에 쌀 수매비, 보관비, 금융비를 포함해 8000억원이 소요된다. 그런데 아까, 질문했듯이 우리나라 희석식소주는 외국산 농산물로 만든다. 아니, 남아도는 국내 쌀을 처리하는데, 일년에 8000억원이 드는데, 정작 국민들이 즐겨 마시는 소주는 왜 국산 쌀로 만들지 않는가? 물론 외국산 타피오카(고구마 전분)가 쌀보다 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금만 종량세로 바꿔도 쌀을 원료로 한 술 생산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쌀이 타피오카보다 5배 비싸다고 치자. 술 한병에 쌀은 500원 들어가는 반면, 타피오카는 5분의 1인 100원 든다고 하자. 타피오카를 이용한 소주는 가격이 2000원이면 쌀로 만든 소주는 원료비의 차이(400원)만큼 비쌀테니 2400원이 된다. 종량세일 경우에 그렇다는 거다. 그러나, 종가세를 적용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 주세 72%에 교육세까지 포함하면 타피오카 소주와 쌀소주 가격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원가가 비쌀수록 세금 역시 비례해 늘어나기 때문에 현행 종가세는 저렴한 술 생산에만 절대 유리한 세금 정책이다.
때문에 현행 주세가 종가세에서 종량세로만 바뀌어도, 주류업계의 쌀 소비는 크게 늘어날 것이다. 타피오카 대신 쌀을 원료로, 연속식 증류기로 주정을 만들 수도 있다. 또 단식 증류기로 만든 소주원액에 쌀로 만든 주정을 섞을 수도 있어, 제조원가를 낮출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 기존 희석식소주와는 차원이 다른 품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격경쟁력도 갖춘 제품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정부의 세제지원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화요가 얼마나 선전하고 있나. 화요같은 기업이 계속 나와야 한다.”
-증류식 소주 개발은 하고 있나?
“우리가 내놓을 가격대의 소주가 안착할 수 있는 여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종가세인 세금정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머지 않아 주세가 바뀔 것으로 보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주 레시피는 공개할 단계가 아니지만, 세상이 깜짝 놀랄 술을 준비하고 있다고만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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