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성인·미성년자 임신 ‘고딩엄빠’ 폐지 요구 잊었나 [TV보고서]

이해정 2024. 7. 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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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N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5’)

[뉴스엔 이해정 기자]

'고딩엄빠'가 또 다시 성인과 미성년자의 교제와 임신을 다뤘다.

7월 24일 방송된 MBN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5'에는 고딩엄마 손미선이 고교 재학 시절 10살 많은 28살 남자친구를 만나고 임신, 결국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28살이 왜 고등학생을 만나냐"는 분노는 서장훈의 것만은 아니다. 지난 2022년 3월 첫 방송될 때부터 미성년자의 임신과 출산을 다룬다는 콘셉트로 비난받았던 '고딩엄빠'는 숱한 논란과 지적에도 불구하고 시즌 5까지 론칭,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제작진은 시즌3 방송을 시작하며 "이번 시즌을 통해 청소년 임신, 출산 미화가 아닌 청소년의 혼전임신에는 냉혹한 자기희생과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보다 명료하게 보여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MC들이 "미성년자의 임신을 미화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중간 광고처럼 끼워 넣는 것 외에는 별다른 연출의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냉혹한 자기희생'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재연 장면에서 폭력적인 엄마가 딸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모습 등을 가감 없이 송출하면서 자극성만 높이는 꼴이 됐다.

사실 제작진이 앵무새처럼 같은 변명을 반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앞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소위원회(이하 '방통소위') 회의에서 '고딩엄빠2'에 제기된 민원에 대해 '문제없음'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방통소위 위원들은 "이게 문제라고 하면 '춘향전'이나 '로미오와 줄리엣'도 다 부도덕한 게 된다. 책임을 갖고 애를 낳는다고 칭찬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물론 '춘향전'은 주인공 나이가 16세 내외이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줄리엣이 13~14세, 로미오가 20세 정도로 추정된다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최소 300년 전 쓰여진 두 작품이 오늘날의 미성년자 임신을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반대로 성인과 미성년자의 성관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분명히 존재한다. 형법 제305조는 19세 이상 성인이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해 간음이나 추행한 경우 상대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으로 간주해 처벌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강제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면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는 성인 사이 강간죄에 비해 훨씬 중하게 처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합의 하에 이루어진 성관계라고 하더라도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책임을 갖고 애를 낳는다고 칭찬해줘야 한다"는 방통소위 의원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다만 '고딩엄빠' 연출 방향이 실제로 그러한가를 따져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고딩엄빠' 레퍼토리는 매회 거의 비슷하다. 불행한 유년기-그로 인한 방황-뜻하지 않은 교제와 임신을 재연 장면으로 보여주고 MC들이 스튜디오에 나온 '고딩엄빠'에게 "이혼했어요? 남편은 어디 있어요?" 묻는다. 이후 남편이 나오면 안도의 한숨을 짓지만 관찰 영상에서 줄줄이 사탕처럼 아이들이 쏟아지면 황당과 혼돈으로 말을 잇지 못한다. 어떤 경우엔 남편이 여럿이고, 어떤 경우엔 남편이 여럿이다 지금은 없고. 파격의 수위는 다채롭지만 결국 '고딩엄빠'의 줄거리는 충격, 혼란, 분노다. 스테이크에 얹어지는 가니쉬처럼 종종 야무진 '고딩엄빠'가 출연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자극적인 이야기로 돌아간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다. 당해 혼인 건수도 19만4천 건으로, 10년 전(32만3천 건)보다 39.9% 줄었다. 정부는 청년층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이유로 일자리, 양육, 주거 부담을 꼽고 있다.

이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는 추세가 계속되는 와중에 덜컥 임신하는 '고딩엄빠'가 곱게 보일 리 없다. 꼭 모든 준비가 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준비 역시 주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확실한 건 '고딩엄빠'에서 다루는 열악한 환경, 싸우는 부부, 조모에게만 의지하는 육아 등이 "책임감을 갖고 기르는" 그림처럼 보이진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낳았으니 어떻게든 길러보겠다는 의지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고딩엄빠'를 음지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에도 십분 공감한다. 시청자 역시 '고딩엄빠' 기획 의도에 반발하는 게 아니다. 다만 자극에 물든 '고딩엄빠'가 연출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잠깐 지나가는 재연 영상이라 할지라도 성인, 미성년자 간 교제와 임신을 로맨틱하게 다루지 말아 달라는 시청자의 호소가 그렇게 수용하기 어려울까.

계속해 '폐지 요구'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하면 "청소년의 혼전임신에는 냉혹한 자기희생과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보다 명료하게 보여줄 것"이라는 말 뿐인 약속을 한 제작진에 냉혹한 자기희생과 책임이 따를지 모른다.

뉴스엔 이해정 hae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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