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한겨레 2024. 7. 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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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민기 연속 추모 기고
주철환 전 문화방송 프로듀서
필자와 김민기. 주철환 제공

영원한 ‘뒷것’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다. 각계각층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의 삶을 기리는 연속 기고를 싣는다.

지인이 세상을 떠나면 함께했던 장면들이 휘리릭 스쳐 지나간다. 이럴 땐 그 어떤 등불보다 주마등이 요긴하다. 누구를 맞이할 때가 아니라 보내줄 때 켜는 등이라서다. 천국의 사정관이 직업을 물으면 형은 뭐라 답할까. 마지막 직장이 ‘학전’이었으니 그의 직업은 선생 겸 농부다. 시인 이육사가 ‘광야’에서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외쳤던 것처럼 김민기는 그 밭에서 많이 뿌리고 많이 거두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형과의 연들이 다시 등을 밝힌다. 내가 청소년 시절 형은 주로 라디오 속에 있었고 한밤에 우리는 내밀히 만났다. 순전히 일방적이었다. 형이 내 또래일 때 지은 노래들을 테이프에 녹음하고 한 소절도 틀리지 않게 불러서 모조리 외워버렸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직접 만나 고백까지 했으나 그때 그가 보인 반응은 차분하고 덤덤했다. 많은 찬미자 중 하나여서 그랬나 생각했는데 그것이 그의 성품이었고 끝까지 달라지지 않았다.

1978년 3월 모교에 국어 교사로 부임한 나는 노래를 수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어려서부터 좋은 노래는 움직이는 시로 간주했다. 읽지 않는 시는 시집에 갇힌 상태여서, 어떤 시집은 시의 집이면서 시의 무덤이다. 노래는 불러야 노래다. 이름을 부르면 사람이 대답하듯이 노래를 부르면 노래 속의 세상이 응답한다.

‘아침 이슬’은 첫 문장이 무려 52자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수사와 비유를 가르치기에 적절한 노래다. 이슬은 자연에서 빌린 보조관념이고 원관념은 세상으로부터 받은 설움이다. 작가(서정적 자아)는 삭이거나 저장하지 않고 설움을 과감히 버린다. 버리기 전에 두 개의 중요한 동사가 나오는데 하나는 ‘배운다’, 하나는 ‘가노라’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배우기만 하고 가지는 못한다면 그건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교실에 김민기의 조카(박일규)가 있었다. 나로서는 운명이라 할 만하다. 소년은 교실에서 김민기를 언급하는 교사에게 어느 날 외삼촌의 노래집을 선물한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당시의 제목은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이었으나 나중에 ‘상록수’로 뿌리내린 그 노래가 음반 1면 맨 위에 있었다. 음반 표지 어디에도 김민기라는 이름은 없었는데 그 까닭을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건 2004년 3월20일 학전 소극장에서다.

교직에 있다가 뒤늦게 입대했는데 내무반 신고식에서 그 2면에 있던 노래를 불렀다. 신병에게 어울리지 않게 제목이 ‘늙은 군인의 노래’였다. 제대 후 대학원 진학과 함께 방송사에 프로듀서로 입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속에만 품고 지냈던 그분을 실물로 영접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당신의 노래란 노래는 다 안다고 자랑한 후 나중에 그걸 자료로 ‘노래의 힘’이라는 논문을 쓰고 싶다며 속맘을 드러낸 순간 그가 낮은 목소리로 제어했다. “그런 거 하지 마세요.”

논문은 쓰지 못했으나 절호의 기회가 내게 왔다. 한울 출판사에서 ‘김민기’라는 책을 내는데 주인공의 대담자 중 하나로 나를 지목한 것이다. 적잖이 흥분했으나 그러면 형이 싫어한다는 걸 아니까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무려 34쪽(524~557쪽)에 걸친 질의응답 속엔 노래의 힘도 들어 있고 김민기의 힘도 들어 있고 사랑과 감사의 힘도 들어 있다. 조금이라도 존경의 마음을 전할라치면 형은 그때마다 하지 말라고 막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제 나는 주저하지 않겠다. 쓸데없다는 건 형이 가진 겸손의 언어일 뿐 나는 그 반대로 쓸 데 있는 자리마다 쓰려고 마음먹었다.

주철환 제공

문상을 마치고 나오는데 반백의 신사가 나를 맞는다. 인연의 다리를 놓아준 일규다. 외삼촌 이름이 왜 음반에 없냐고 물었을 때 수줍게 웃으며 나중에 직접 물어보라고 했던 그 소년은 어느새 60대가 되었다. 내가 처음 쓴 책 제목이 ‘숨은 노래 찾기’(1991년 문음사)인데 거기에 나는 이렇게 썼다. “그가 되찾은 이름이 진정 부끄럽지 않은 이름이 되는 날 우리는 윤동주와 김민기를 같은 항목에 넣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윤동주 같다고 말하면 또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한 소리 하셨을 거다. 그래도 나는 둘이 비슷하다고 느낀다. 시로 노래로 연극으로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두 사람이 묘하게 닮지 않았는가.

주철환 전 문화방송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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