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은 왜 그럴까? [뉴스룸에서]
서보미 | 프로덕트서비스부장
‘프로 일잘러’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빠르고 완벽하게 처리하는 동료는 20대 여성입니다. 제 생각엔 더 배울 게 있을까 싶은데, 그는 퇴근 후 새로운 프로그램을 공부한다고 합니다. 일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평일 저녁 하루는 독서모임에 가고, 주말엔 도서전시회나 강연을 찾아다닙니다. 말로만 듣던 ‘갓생’(모범적이고 부지런히 잘 사는 삶)을 사는 20대 동료를 영접하고 나니 존경심과 함께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40대라서 다행이다.’
주말까지 꽉 차게 사는 2030 여성을 매달 한번씩 만나왔습니다. 벌써 7개월째입니다. 저희 부서가 운영하는 뉴스레터 ‘휘클리’가 뉴스레터 구독자와 한겨레 독자를 대상으로 마련한 대면 수업 ‘휘클리 심화반’(심화반) 덕분입니다. 지금까지 일곱차례 열린 심화반에는 총 342명(중복 포함)이 함께했는데, 그중 150명(44%)이 2030 여성이었습니다. 취업준비와 직장생활로 지쳤을 그들은 토요일에도 한겨레신문사까지 찾아와 가자 전쟁, 기후위기, 페미니즘 백래시(반발성 공격) 등을 공부한 뒤 돌아갔습니다.
뉴스레터의 주요 구독자가 2030 여성이기 때문에 뉴스레터의 파생 상품인 강연의 참가자 대부분도 2030 여성이겠거니, 처음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심화반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달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 15만명이 다녀갔는데, 관람객의 상당수는 2030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에 놀란 국외 출판사 관계자들이 ‘코리안 미스터리’라는 말까지 했다고 전해집니다.
한국의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20대 동료에게서 얻었습니다. 그는 또래 여성의 ‘추구미’(추구+미(美))에 대해 들려줬습니다. 요즘 2030 여성은 롤모델이나 워너비를 따라 하지 않고 “지적이면서도 자기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뉴스에 관심이 많고, 독서와 강연으로 자기계발하며, 하루하루를 생산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힙한 트렌드처럼 보이는 그들의 추구미는 사실 생존전략에 가깝습니다. 비혼·비출산을 결심한 많은 여성이 혼자서 삶을 꾸려가고 있지만, 경제적인 독립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불안정한 일터에서 저임금을 받는 여성은 살아남기 위해 프로 일잘러가 되는 동시에 ‘프로 이직러’가 되어야만 합니다. 일만 잘한다고 독자 생존을 할 수도 없습니다. 재테크를 잘해서 종잣돈을 모아야 하고, 결국 내 집 마련에도 성공해야 합니다. 이런 끝 없는 ‘투두 리스트’(to-do list: 해야 할 일 목록)는 여성을 불안하게 하고 강박적으로 자기계발에 매달리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2030 여성이 각자도생에만 몰두하는 건 아닙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듬해 치러진 2017년 대통령 선거부터 2030 여성의 투표율은 또래 남성보다 항상 높았습니다. 혼자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범죄, 젠더 폭력, 기후위기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높은 투표율에 반영된 거로 보입니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둔 지난 5월 정책입법데이터 분석업체 스트래티지앤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2030 여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은 범죄예방·처벌강화(60%)였습니다. 반면 2030 남성은 구직활동·주택마련 같은 청년 지원(51%) 정책을 최우선으로 꼽았습니다.
생존 불안과 자기 관리의 강박에 시달리는 2030 여성을 보면서 심화반의 추구미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고군분투하는 여성들과 고민을 나누고, 이들을 연결하는 작은 커뮤니티(공동체)를 추구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금까지 심화반을 다녀간 이들이 남긴 말에도 그런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을 한다는 건 언제나 벽에 부딪히고 어두운 곳을 혼자 걸어가는 기분인데 가끔 이런 활동이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빛이 되곤 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런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해요.”
달라진 심화반은 8월에 열립니다. 누군가와 편하고 자유롭게 지식과 고민을 나누고 싶다면 심화반으로 오세요. 2030 여성은 물론 모든 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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