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갈려 죽는 수컷 병아리... 현실과 동떨어진 동물보호법

고은경 2024. 7. 25.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 제3차 동물복지 5개년 계획 추진 중
본보, 5인 전문가 좌담회 열고 긴급 점검
동물자유연대는 국내에서 매년 태어나자마자 도태되는 수평아리가 5,000만 마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AFP 연합뉴스

정부가 제3차 동물복지 5개년 종합계획(2025~2029년) 추진에 들어갔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시행되는 제2차 종합계획에 이은 것이다. 이와 별도로 2022년 말에는 동물복지법으로의 개편을 골자로 한 동물복지 강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24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동물권 단체 등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분야별로 외부 전문가들과 제3차 종합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는 현 종합계획 가운데 시행하지 못한 내용과 내·외부에서 지적한 개선사항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는 전문가 긴급 좌담회를 통해 농식품부가 추진 중인 제3차 종합계획에 어떤 내용이 필요한지 다각도로 살폈다. 좌담회에는 권유림 변호사(동물의권리를옹호하는변호사들 대표), 박정윤 수의사(올리브동물병원장),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전략사업국장,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가 참석했다.


동물복지 평가 세부 기준 마련 필요

채일택(왼쪽부터) 동물자유연대 전략사업국장, 권유림 변호사,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 박정윤 수의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열린 동물복지 5개년 계획 좌담회에 참석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사회=정부는 2022년부터 동물복지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동물보호와 복지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하나.

△천명선=현행 동물보호법에서는 동물복지를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고 있다. 동물복지를 인도적 처우를 약속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중요한 것은 동물이 어떤 상태인지 측정 가능한 지표로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동물에게 긍정적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자 책임인 부분도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박정윤=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동물복지라고 하면서 정작 인간의 이익에 맞춰 일관성 없이 정의돼 온 게 현실이다. 또 동물에게 '최소한'이 아닌 '최선의' 삶을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을 동물복지라고 한다면 기존 법에는 농장동물 분야가 너무 소외돼 있었다. 반려동물 이외에 다른 동물들의 처우 개선 내용도 포함돼야 한다.

△권유림=동물보호법은 동물을 바라보는 낮은 의식 수준을 끌어올린 측면이 있지만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면서 형식적 보호에 멈춰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법에서도 동물을 살아있는 동안 행복을 누려야 하는 존재로 보고, 동물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도록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다.

△채일택=그동안 동물복지는 동물을 나쁜 것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으로 정의돼 왔는데, 이제는 좋은 삶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불어 현재는 반려동물보호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대상이 한정돼 있어 (동물복지법에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다른 동물에게도 적극적 복지를 제공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윤진현=동물복지는 보호와 다르게 완벽하진 않더라도 동물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황으로 개선되도록 하는 내용까지 포함된다고 본다. 현행 축산법에는 복지 개선을 위한 구체적 기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축종 및 사육 단계별 특성에 맞춰 세부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서울의 한 신종펫숍에서 판매되고 있는 푸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파양견은 정작 매장에 없었다. 고은경 기자

△사회=법이 개정돼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있다.

△천명선=사실 법이 개정된 것도 큰 성과다. 다만 그동안 입법을 강화하는 데만 너무 치중돼 온 것 같다. 이제는 입법을 넘어 (동물복지가)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다.

△채일택=예컨대 반려동물 생산업 및 판매업의 경우 허가제로 전환됐지만 현장에 가면 여전히 불법 사항이 만연하다. 법이 바뀌면 현실도 바뀌냐는 질문을 되물을 수밖에 없다. 영국 등 해외 사례를 봐도 실제 현장에서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시민들의 힘이다.


동물학대 줄이려면 소유권 제한·신고제 활성화돼야

박정윤(왼쪽부터) 수의사,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전략사업국장, 권유림 변호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열린 동물복지 5개년 계획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사회=동물학대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여전히 동물학대자의 소유권과 사육권 제한이 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다.

△권유림=동물학대자의 소유권 제한이 논의돼 왔지만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소유권을 제한할 수 있는지 기준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양형 기준을 세우듯, 예컨대 동물을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 등의 기준을 두고 소유권 제한과 관련한 규정을 마련할 수 있다.

△채일택=동물학대는 보호대상, 피해유형 측면에서 아동학대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반면 아동학대는 대응체계가 있지만 동물학대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현장에서 가장 큰 문제다.

경기 의왕시 외부에서 길러지고 있는 개가 처량하게 앉아 있다. 짧은 목줄에 묶여 비를 피할 곳이 없지만 현행법상 소유자를 동물학대로 처벌할 수 없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박정윤=상습 동물학대범의 경우 해외처럼 신상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 학대 신고 활성화를 위해 핫라인을 설치하는 등 신고 문턱을 낮출 필요도 있다. 또 지역 주민들이 구성하는 동물보호 감시단 등을 통해 신고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강력한 벌금보다 학대를 예방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권유림=해외처럼 신고제가 활성화되려면 시민이 신고했을 때 담당 공무원이나 경찰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뒤따라야 한다.


단계별 동물복지 인증제도 도입 고려해야

윤진현(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 박정윤 수의사, 고은경 한국일보 기자, 권유림 변호사,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전략사업국장이 1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열린 동물복지 5개년 계획 좌담회에 참석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사회=동물보호법에 농장동물이 소외돼 왔다는 지적이 많은데 동물복지인증 상황은 어떤가.

△윤진현=우리나라 동물복지인증제는 2012년 산란계로 시작해 양돈, 육계 등으로 확산됐지만 산란계를 제외하고는 실적이 저하다. 염소와 오리농장 가운데서는 인증을 받은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농가들이 동물복지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못 하는 거다.

△사회=동물복지인증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은 없을까.

△윤진현=국내 동물복지인증제도는 해외의 인증 기준을 그대로 가져왔다. 높은 수준의 기준을 모두 통과해야만 인증받을 수 있게 돼 있어 농가들에는 문턱이 너무 높다. 또 평가 시 동물의 상태가 아닌 시설 기준으로 평가하는 데다 평가 전문 인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덴마크처럼 인증을 부분별, 단계별로 주는 제도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또 평가 인력을 위한 교육 가이드라인 마련 등도 뒷받침돼야 한다.

시민단체들이 올해 3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앞에서 소싸움의 국가무형유산 지정가치 조사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천명선=동물복지 분야에 충분히 투자하고 연구한다면 비용을 낮추면서도 동물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창의적 방식을 고안해낼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동물복지제도가 발달돼 있는 유럽의 경우 정부와 민간의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채일택=동물복지인증 기준을 높인다고 해서 농가들에 마이너스만 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산란계 수평아리의 경우 국내에서만 연 5,000만 마리가 태어나자마자 도태된다. 어떤 법적 근거도 없으며 동물학대 소지마저 있다. 반면 독일의 경우 부화 전 성 감별 연구에 대한 지원을 해왔고, 2022년부터는 수평아리 도태를 금지하고 있다. 부화를 안 시켜도 되기 때문에 인도적이기도 하지만 기술 개발에 따라 비용도 더 줄일 수 있다.


민원처리 수준 벗어나 복지 향상 방향성 담겨야

지난해 실험에 동원된 동물 수가 499만여 마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제3차 동물복지 종합계획에 반려동물뿐 아니라 농장동물, 실험동물의 복지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사회=동물복지 종합계획에 꼭 포함됐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면.

△윤진현=동물복지 분야의 전문가 양성이 꼭 필요하다. 정책 연구 용역만 있지 기초 연구가 없기 때문에 지속적인 연구가 되지 않는다. 해외 정책만 가져올 게 아니라 국내 실정에 맞는 정책 개발이 절실하다.

△천명선=선언적 내용에 그치지 말고 국가가 동물복지 수준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을 세우고,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하는 내용이 담겼으면 한다. 민원처리 수준에서 벗어나 동물복지를 어떻게 향상시킬지에 대한 계획이 포함돼야 한다. 지금껏 공개된 내용을 보면 전문가 양성 등은 뒷전인 반면 산업화 측면이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연일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광주 북구 장등동의 한 축사에서 북구청 동물정책팀 직원들이 온도를 낮추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광주=뉴스1

△채일택=동물복지 종합계획은 동물과 인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청사진이다. 실증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납득할 수 있는 내용들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정부의 계획을 믿고 따라갈 수 있다.

△권유림=(개물림 사고처럼) 사회적 이슈가 터지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조치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단발적 해결 방안 제시가 아니라 지속적이며 실질적으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박정윤=종합계획이라고 해서 꼭 거창한 내용이 담길 필요는 없다. 실제 동물의 삶에 어떤 게 필요한지 파악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안이 담겨야 한다. 또 동물복지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적절하게 배치해야 한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