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배 신화' 무너지나... 문어발 인수로 흔들리는 나스닥의 꿈

김은영 기자 2024. 7. 2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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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커머스 1세대 ‘지마켓 신화’ 일군 구영배
사내 벤처에서 나스닥 입성까지... 지마켓 초고속 성공
‘티메파크’ 줍줍... 큐익스프레스로 또 나스닥 도전
적자 플랫폼 모아 몸집 키우다 유동성 위기 직면

국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1세대를 일군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의 성공 신화가 무너질 조짐이다.

이른바 ‘티메파크(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를 줄 인수하며 단숨에 국내 이커머스 시장 4위에 올랐지만, 티몬·위메프의 판매자(셀러) 정산금 지급 지연 피해가 소비자와 유통업계, 금융업까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이번 사태로 여행업계에서만 1000억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중소 업체들의 연쇄 도산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선 자본력이 없는 큐텐그룹이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위해 실적이 부진한 플랫폼을 무리하게 인수한 것이 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직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구 대표의 위기 대응 능력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사내 벤처로 나스닥까지 간 ‘지마켓 신화’, 어쩌다

구 대표는 서울대를 졸업한 후 미국계 유전 개발회사에서 일하다 1999년 이기형 당시 인터파크 회장(현 그래디언트 회장)을 만나 회사에 입사하며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계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사내벤처로 옥션의 경매 방식을 적용한 ‘구스닥’을 출범했으나 별 성과를 얻지 못했고, 2003년 이름을 지마켓(G마켓)으로 바꾸고 오픈마켓 사업모델을 도입하며 고성장을 이룬다.

오픈마켓이란 자유롭게 물건을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장터’다. 당시 새로운 상거래 기법으로 주목받았다. 2004년 1만 건이던 지마켓의 거래 건수는 2005년 60만 건으로 급증했고, 연 거래액 1조원을 돌파하며 옥션을 제치고 국내 이커머스 1위로 올라섰다.

2004년 지마켓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고, 2009년 미국 이베이에 5500억원에 매각됐다. 이 과정에서 지마켓 주식을 갖고 있던 구 대표는 715억원을 손에 쥐었다.

인천 영종도에 있는 큐익스프레스 풀필먼트 센터. /큐텐 제공

구 대표는 경업금지 조항에 따라 2010년 싱가포르에 건너가 이베이와 조인트벤처 형식으로 큐텐을 설립했다. 앞서 유전 회사 재직 시절 인도에서 근무하며 만난 귀족 계급의 현지인과 결혼했다. 그는 인도 오픈마켓 샵클루스를 인수하는 등 동남아 시장에서 사세를 확장했다.

◇큐텐으로 또 나스닥 꿈... 적자 플랫폼 ‘줍줍’

구 대표는 경업금지가 풀린 2019년 큐텐의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 한국 법인을 설립했다. 이어 2022년 티몬을 시작으로 인터파크커머스, 위메프, 미국 쇼핑 플랫폼 위시, AK몰 등 5개 플랫폼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측근들이 함께했다. 지마켓 전성기를 함께 한 류광진 대표에게 티몬을, 큐텐 출신 김효종 대표에게 위메프를 맡겼다. 김 대표는 지난해 말 위메프를 사임했고, 현재는 위메프 출신인 류화현 대표가 이끌고 있다.

구 대표가 플랫폼들을 사 모은 이유는 이들을 활용해 물류 계열사인 큐익스프레스의 물동량을 늘려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서다. 티몬과 위메프의 경영권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인수할 수 있던 것도 이 ‘장밋빛 계획’이 먹혔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큐익스프레스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들 플랫폼을 인수했다.

그의 구상은 통한 듯했다. 티몬·위메프를 인수한 직후인 2023년 큐익스프레스 한국 법인의 매출은 전년 대비 10%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만년 적자 기업들을 인수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인수 전에도 적자였던 티몬과 위메프는 큐텐에게 인수된 후 재무 상태가 더 나빠졌다. 위메프는 지난해 영업손실이 1025억원으로 1년 사이 84% 증가했고, 티몬은 올해 감사보고서도 내지 못했다. 현재 두 회사의 합산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9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최근 들어 티몬과 위메프는 선불충전금인 티몬캐시와 문화상품권·배달앱 금액권 등을 선주문 방식으로 할인 판매하는 행사를 자주 열었다. 시장에선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긴 판매자 정산 주기를 활용, ‘돌려막기’를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곧 정산을 받지 못했다는 판매자들이 쏟아져 나왔고, 피해는 소비자들에게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서울 강남구 티켓몬스터 본사의 모습. /뉴스1

◇무리한 몸집 불리기, 독으로

업계에선 자금이 부족한 큐텐그룹이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입성만을 좇은 결과라는 평이 나온다. 달라진 유통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채 거래액을 부풀리기 위해 경쟁력 없는 플랫폼을 무리하게 인수한 게 독이 됐다는 분석이다.

사실 큐텐이 티메파크를 ‘줍줍(크게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할 수 있던 건 쿠팡을 중심으로 재편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이들 플랫폼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티몬의 경우 2019년 롯데그룹이 인수를 고려했을 때 거론된 기업가치가 1조원 수준이었으나, 큐텐이 매긴 티몬의 기업가치는 2000억원에 불과했다.

구 대표를 안다는 한 이커머스 업계 인사는 “앞서 지마켓을 단기간에 띄우고 나스닥까지 간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도 속전속결로 몸집을 키워 상장하려 한 것 같다”면서 “인수사의 재무 건전성과 미래 가치를 꼼꼼히 검토했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다”라고 말했다.

비전 제시도 부족했다. 큐텐그룹은 동남아에 거점을 둔 큐텐을 이용해 인수한 플랫폼들을 역직구 플랫폼으로 특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역시 알리익스프레스(알리)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의 성장을 간과한 전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또 다른 이커머스 관계자는 “현재 온라인 무역 거래는 중국이 다 먹고 있다. 국내 1등인 쿠팡조차 해외에선 애를 먹는 상황”이라며 “달라진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안이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로 그룹 전체가 흔들리면서 올 하반기 추진하려던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 계획은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악화일로의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구 대표의 결단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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