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퇴직연금 연금화 위해…"연금수령 저율과세, 일시금수령 중과세"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퇴직연금이 국민연금과 더불어 노후 소득 보장 장치로 작동하려면 은퇴자들이 퇴직급여를 말 그대로 연금 형태로 수령해야 한다.
그러나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받는 비율은 2020년 3.3%, 2021년 4.3%, 2022년 7.1% 등으로 꾸준히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2023년에는 퇴직연금 수급을 시작한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 53만개 중 연금을 선택한 계좌는 10.4%로 처음으로 10%를 돌파했다. 그렇지만 89.6%는 IRP 계좌를 해지하고 일시금으로 탔다. 겨우 열 명 중 한 명만 연금을 고른 셈이다.
10명 중 9명은 '일시금' 선택…세금 부담에서 차이 나지 않은 탓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퇴직 IRP 계좌를 그만큼 쉽게 해지할 수 있는 데다가 일시금으로 받든, 연금으로 수령하든 부담해야 하는 세금에서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은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퇴직연금에는 누가 적립금 운용 결과를 책임지느냐에 따라 확정급여형(DB; Defined Benefit)과 확정기여형(DC; Defined Contribution), IRP(개인형 퇴직연금,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등이 있다.
DB는 고용주인 회사가 운용책임을 지지만, DC와 IRP는 근로자 개인이 민간 금융기관(퇴직연금 사업자)과 계약해 직접 투자상품을 정하는 등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고 책임진다.
특히 IRP는 회사에서 퇴직하거나 이직하면서 수령한 퇴직급여를 보관, 운용하는 계좌로 근로자가 회사를 그만두면 퇴직연금 적립금은 원칙적으로 IRP로 옮겨진다.
즉, 이직 혹은 퇴직하면 퇴직급여를 개인형 IRP로 받게 된다. 이를 그대로 유지해 DC형으로 운용하다가 나중에 연금 형태로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이직 및 퇴직으로 개인형 IRP로 이전된 퇴직급여를 대부분 해지해서 전액 일시금을 받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높은 우리나라 퇴직 IRP 해지율은 퇴직급여의 연금화에 결정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 소득을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서 은퇴 때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퇴직 소득세 강화 등 세금 체계를 개편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퇴직급여를 한꺼번에 일시금으로 받을 때 내는 퇴직 소득세가 연금으로 수령할 때 납부하는 연금 소득세와 큰 차이가 없어 가입자들이 퇴직 IRP 해지에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실제로 퇴직 소득세의 경우 연말정산 때 인적 공제 등 여러 가지 공제해주다 보니 상대적으로 공제율이 높아 실효세율이 4∼5%에 불과하다. 연금 소득세의 실효세율(1∼2%가량)과 비교해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낮다.
연금 소득세 감면 인센티브 부여하고 적립금 담보대출 등 원금 보전 노력 필요
이에 따라 퇴직연금의 연금화를 위해서는 일시금 인출 소득세와 연금 인출 소득세 간 차이를 두는 방향으로 소득세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즉, 연금으로 인출할 때는 연금 소득세를 대폭 낮추는 등 세금 인센티브를 주되, 연금화하지 않고 일시금으로 인출할 경우 퇴직 소득세를 지금보다 더 많이 부과해 쉽게 IRP를 해지하지 못하게 막자는 것이다.
보험연구원 강성호 선임연구위원과 이소양 연구원의 '주요국 퇴직연금의 연금화 정책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미국 등 주요국의 퇴직연금 소득은 우리나라처럼 분리과세 되지 않고 종합소득으로 세금이 매겨지기에 일시금 인출에 따른 세 부담이 크다.
영국은 55세 이전에 수령하면 55%의 소득세율을 적용해 조기 수령을 억제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의무 연금화 제도를 통해 수급자 100%가 연금 형태로 퇴직연금을 수령한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유호선·김성일·유현경 연구원은 '퇴직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 강화 방안' 연구보고서에서 "퇴직연금의 현재 연금 수령 나이인 55세 이전에 일시금으로 수령하면 소득세를 인상하고, 연금으로 타면 소득세를 큰 폭으로 낮추는 방법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연구진은 또 "영국의 경우처럼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퇴직자는 일정한 조건에서 전체 적립금의 25%만 일시금으로 인출할 수 있게 허용하되, 이 경우 퇴직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 등 비과세 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IRP 해지 대신 IRP 적립금을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게 활성화하는 등 적립금 원금을 보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도 "절세는 언제나 좋은 유인책"이라며 연금 소득세를 더 감면해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에는 연금 형태 수령이 10년만 초과하면 더 이상 감면 혜택을 주지 않았는데 여기서 벗어나 종신연금 혹은 20년 이상 장기간 연금으로 수급하면 더 큰 감면 혜택을 추가해서 제공하자고 김 교수는 제안했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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