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초심이란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모두 다짐이라는 것을 한다. 다짐을 통해 다른 이와 약속하고 그 약속을 신뢰라는 바탕 위에 지키기 위해 스스로에게도 마음을 다진다. 처음의 마음가짐이라는 ‘초심(初心)’은 이처럼 나의 마음가짐과 다른 이의 마음가짐에 관계한다. 따라서 가볍게 접근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무겁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해 9월 처음 원고를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록 디자인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교육의 현장에서 다진 연구스토리들이 있지만 문화라는 키워드로 불특정 다수에게 주제를 잡고 세태를 전달하며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의 의구심이 있었고 이에 대한 글을 쓸 것을 결심하며 스스로와 독자에게 다짐한 초심을 밝히고자 한다. 나의 초심은 다수의 글을 통해 과연 처음의 다짐을 유지하고 약속을 지켰을까. 여기서 세 가지 초심을 공개하며 평가를 받아본다. 제1 초심, 문화와 예술, 특히 디자인이라는 영역에서 다른 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제를 선정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개성적인 글이 써지길 바랐다. 비록 아직 젊고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더라도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만들어간 다양한 연구와 교육현장에서의 경험은 누군가에게 마음에 와 닿는 값진 간접경험과 참신한 이야기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러한 제1 초심은 사실 제2 초심을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가 이야기했던 ‘쉽게 읽히지 않는 글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잡은 제2 초심은 바로 빠르고 쉽게 읽혀지는 글을 쓰자라는 다짐이다. 이는 연설을 하는 연사에게도 해당되는 것인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내용과 언변을 가진 자가 좋은 연사도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화와 예술에 대해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부분도 독자에게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으로 다뤄져야 할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글을 읽을 독자들은 전문적인 이론을 얻기 위함도 아니고 학술적인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을 넘어선 일반 대중이라 판단하고 읽으면 바로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글이길 바랐다. 원래 쉽게 읽히는 글을 쓰기가 전문적이고 어려운 글을 쓰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아마 특정 영역의 전문인으로서 대중적인 글을 조금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 것도 누구나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글을 계속 연재한다는 것은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을 정도로 지난한 일임을 새삼 확인했다.
마지막 제3 초심은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동기 부여라 할 수 있는데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디자인교육 현장에서 함께 연구하는 학생들과 전문 분야의 후배들에게 앞서가 본 선배로서 고민해 볼 담론과 키워드를 제시하는 주제를 발굴하고 강의에서 미처 전달하지 못했던 연구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 문화에 대한 접근, 디자인을 둘러싼 환경 등에 대해 공유하고 전달하고 싶었다.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브렌다 유랜드는 ‘당신의 아이들이 음악가가 되기를 바란다면 당신 자신부터 진지하게 모든 지성을 다 부어 음악을 하라. 만약 아이들이 학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당신 자신이 공부에 매진하라. 만약 아이들이 정직하기를 바란다면 당신 자신이 정직하라’고 기술한다. 내가 써내려간 다양한 글 속에서 드러난 디자인 작업의 철학, 건강의 중요성, 새로운 세대들이 가지면 좋을 마음가짐, 리더의 덕목 등에 대한 이야기의 글은 나의 경험이면서 미처 내가 놓쳤던 중요한 것들,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들로 대변된다. 더불어 나의 학생들, 연구원들은 나보다 나은 길을 걷기를, 그리고 더 나은 연구와 작업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물론 앞으로 내가 전개할 다양한 디자인 연구 분야에서 자신에게 진실 되고 거짓 없기를 바라고 다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전 학창시절, 기초작문 시간 때 글이라는 것은 어려워지면 독자에게는 지옥의 시간을 선사하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혹시 누군가에게 지옥의 시간을 선사하지는 않았을까? 두려운 일이다. 글은 말처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이니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의 시간 속에서 지옥을 선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의 초심은 과연 가볍게 사라졌을까. 아니면 다짐이 돼 나와 타자에게 약속으로서 이행됐을까. 무겁게 질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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