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은 일본인 환영 인파에 숨어 있지 않았다
이토, 총 맞은 직후 “누구야” 외쳐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하기 직전, 안 의사는 일장기를 흔드는 일본인 환영 군중 속에 숨어 있다가 총을 꺼낸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연구서 ‘지식인 안중근’(태학사)에서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안 의사는 환영 군중과 멀리 떨어진 러시아 의장병 뒤에서 총을 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환영 군중 속에서 안 의사가 나와 저격했다는 얘기는 사건 당일 일본 모지신보(門司新報)의 호외 기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후 이 설은 사실처럼 널리 퍼져 많은 삽화에 그려졌고, 1979년 북한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2022년 한국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도 이와 같이 묘사됐다.
그러나 이 교수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찾은 1919년 일본 자료 ‘이토 공의 최후(伊藤公の最期)’를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이 문건은 이토의 10주기를 맞아 하얼빈 일본인 거류민단과 하얼빈 니치니치신문이 진상 규명 작업을 한 결과물이다. 이 문건의 현장 배치도는 플랫폼에서 이토가 타고 온 열차와 가까운 곳에 러시아 의장병이 도열해 있었고, 그 오른쪽엔 각국 영사 대표, 청나라 군대, 일본인 환영객이 차례로 자리 잡고 있었다고 적시했다.
안중근은 하얼빈역 찻집에서 이토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토가 열차에서 내려 러시아 재무대신 코콥초프와 만난 뒤 의장대를 사열할 때, 안중근은 찻집에서 나와 러시아 의장병 뒤에 서 있었다. 이토가 사열을 마치고 왔던 길로 돌아 걸어갈 때 안중근은 러시아 의장병 뒤에서 그를 저격해 명중시켰다. 6m 남짓한 거리였다.
이태진 교수는 “사람들은 이 장면을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본인 환영 인파 속에 몸을 숨겼다가 튀어 나온 것으로 여겼지만, 자료에서 볼 때 환영객의 위치는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결국 안중근은 일본인인 것처럼 스스로를 위장하다가 이토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의장병 대열 뒤쪽에서 고도로 숙련된 사격술로 이토의 가슴과 복부에 세 발을 명중시켰다는 것이다.
‘이토 공의 최후’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한 조선인이 돌연 권총으로 이토 공을 겨냥해 공의 오른쪽을 비스듬히, 몇 발을 연속으로 쐈다. 이 순간 이토 공은 총성이 난 방향을 향해서 잠시 우두커니 서서 낮지만 온 힘을 다한 소리로 ‘누구야?’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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